악당이 된 남자 고르기

2021. 9. 1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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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된 남자 고르기

 


 

1. 

 

계집이 설치는 건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는 뜻이지. 즉위식을 앞둔 그가 웃으며 한 말이었다. 참으로 안쓰럽구나. 계집이 아닌 사내였다면 천하가 네 것이었을 터. 그는 나서서 여주에게 수치심을 안겼고, 조선의 모든 여성들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오라버니. 그렇게 부르면 그는 한껏 표정을 구기고 여주를 제 밑에 무릎 꿇리며 말했다.

 

전하라고 해야지 않겠소, 공주?

 

비릿한 웃음에 여주는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계집이 아닌 사람으로서 짓밟히는 자존심이 아팠다. 이 모든 걸 그림자처럼 지켜보는 병연의 서릿발같은 눈빛까지 모든게 상처였다. 

 

 

- 바람이 찹니다, 마마. 안으로 드시지요. 

따르지 말거라. 나는 네 도움 따위에 기대는 연약한 계집이 아냐.

 

자리에서 일어난 여주가 멀어질 때까지 병연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즉위식은 거행되지 못 했다. 고, 공주 마마! 세, 세자 저하께서. 세자, 저, 저하께서. 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병연인가. 맙소사, 제 호위 무사를 의심하는 꼴이라니. 궁녀 하나 없이 정신없이 궁을 벗어 난 여주는 후원을 보고 있는 병연의 곁에 다가가 섰다.

 

- 천하를 원하신다하면 마마의 손에 안겨드리고 싶었습니다.

병연, 혹 그대가...

- 처음부터 제 주군은 세자가 아닌 공주마마 한 분 뿐이셨습니다.

 

 

- 조선과... 이 사내 또한 모두 마마의 발 밑에 두시지요. 그렇게 해드리기 위해 안겨드린 세상입니다. 

 

 

 

 

 

2. 

 

너 가난하니. 그 때, 아니라고 했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어렸던 여주는 웃으며 넉살 좋게 대답했다. 네, 그런 편이에요. 웃는 듯 아닌 듯 오묘한 표정을 지었던 동재가 떠오른다. 그 때부터 여주의 손에서는 물감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저 상 받았어요, 검사님. 수상 소식에도 미소. 장학금 받았어요. 다 검사님 덕이에요. 감사에도 미소.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를 후원하는 것이라고. 

 

검사님, 저 이사 가요. 남자친구랑 같이 살기로 했어요.

 

 

- 잘됐네.

 

축하한다는 말도, 잘 살라는 말도 없었다. 늘 미소만 지어주는 그에겐 그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를 앞두고 가구를 모두 뺐을 무렵, 다급한 연락이 왔다. 여주야... 너 알고 있었어? 뉴스 좀 봐봐.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뉴스를 열어본 여주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남자친구의 얼굴이.

 

마약을 비롯한 사기, 성추문. 제목에 다 담기지도 못한 죄목들이 기사 안에 잔뜩 열거되어 있었다. 학생! 안 탈거야? 짜증 섞인 기사의 목소리에 불현듯 동재의 얼굴이 떠올랐다. 검사님이면 도와줄 수 있을거야. 차는 빌라가 아닌 서부지검 앞에 섰다. 여주는 한달음에 동재의 사무실까지 올라갔다.

 

검사님, 저!

- 집 없지? 이제.

그게 아니라요, 제 남자친구가,

 

 

- 다 그래. 나는 억울하다고. 검사 앞에서도 거짓말 하는 놈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한텐 안 그랬겠어? 네가 속은거야.

 

정말 아니에요. 걔 진짜 아니에요. 울먹이는 목소리에 별안간 동재가 웃었다. 살리고 싶어? 간절해? 수 어번 고개를 끄덕인 여주가 눈물을 닦았다. 

 

- 짐, 내 집으로 옮겨. 앞으로 나갈 때, 들어올 때, 사람 만날 때 다 나한테 보고하고.

...네?

- 간절하다며? 너 때문에 누명 쓴 네 남자친구 살려야지. 바로 이렇게 달려와서 울 줄 알았으면 진작 처 넣을 걸 그랬네.

 

내가 나 좋자고 돈 처먹고 너한테 나눠준 줄 알았어, 여주야? 목소리가 차게 가라앉았다. 누구 맘대로 남자친구를 만들고 나가서 살 생각까지 해. 그리고 미소. 늘 봐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미소였다. 

 

- 주변 사람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얌전히 내 말만 듣고 그림이나 그리고 살아. 

 

 

- 그럼 사랍답게 살게 해줄게.

 

 

 

 

3.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앤데 재벌 딸이야, 씨바. 나 운 졸라 좋지 않냐? 경박한 웃음에 어울리는 천박한 말투였다. 핸드폰을 내린 태형이 저를 올려다보는 여주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쩌라는 거죠? 강대표 천박하다고 언론에 제보라도 할 건가요?

 

남편이 무능한 건 진작에 알았다. 그가 앉은 이후부터 계열사 주가가 폭락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랑했고 알아온 시간만큼 믿었다. 그 꼴이 우스워보였던걸까. 남편의 경호원인 그가 이런 꼴 사나운 녹음까지 들려주는 걸 보면. 

 

- 제보도 돈도 안 바라요.

그럼 왜 이러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재벌딸 놀라는 꼬라지 보고 싶어서?

 

놀랄만큼 표정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 이혼하세요.

뭐라구요? 

- 안 하면, 이여주 전무가 남편 경호원이랑 불륜하신 걸로 해드릴 거니까.

 

남편이 시켰나?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싶어서, 이런 거짓말까지 하며 나를 놀리고 있는건가? 옅게 남은 믿음에 기대어 수를 읽고 있는 여주의 모습에 태형이 웃었다.

 

- 순진하시네요. 뒷통수를 맞아도 믿고 싶은 사랑이 있는 게.

.........

- 하긴, 그 모습 때문에 제가 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미묘하게 달라진 말투에 어울리는 조소였다.

 

- 아무것도 안 바라는데, 원하는 대로 안 해주시면 바라는 게 많아질 겁니다. 이혼이 싫으면 따로 사세요. 대신 그때부터 강 대표 경호원이 아닌 이여주 전무 경호원일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요?

 

 

- 그 쪽이 저랑 놀아나기 쉽잖아요? 절 갖고 놀라는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극 중 캐릭터만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새로운 인물들이 보고 싶어서 그간 안 쓴 분들로 모셔왔어요. 일교차가 커졌네요. 코로나도 감기도 모두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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