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헌신할 남자 고르기

2021. 6. 24.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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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헌신할 남자 고르기



1. 대국의 공주X호위무사


네가 태어날 때 거대한 폭풍이 일었다. 처마 밑이 흠뻑 젖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지. 너는 폭풍우 속에서 태어난 계집이었다. 국무는 네가 이 나라를 어지럽힐 존재라 하였다. 허나 아바마마만큼은 그 말을 믿지 아니하셨지.

말간 술이 주잔을 넘어 소반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곡선을 따라 흐르는 술이 밑으로 뚝뚝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입 아래로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독주는 입에 맞으십니까? 빙긋 웃는 여주가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아바마마께 안부 전해주세요, 오라버니. 이제 이 나라는 나의 것이라고. 피거품을 토하는 대군이 재빨리 도포자락 속에 손을 넣어 칼을 꺼냈다.

쳐 죽일 계집이 감히…!

칼 끝은 목덜미가 아닌 바닥에 꽂혔다. 소리 소문 없이 들어온 율무가 대군의 목에 칼을 꽂은 덕이었다.

화라도 입으면 어쩌려고 대군의 목에 칼을 꽂는단 말이냐.


- 공주마마께 칼을 들이대려던 자입니다.
훗날 황제가 그대의 목을 베려할지도 모르네.
- 훗날의 황제라면 마마님 아니십니까. 마마님 손에 맞이하는 죽음은 차라리 황홀경에 가까울겝니다.
허면, 지금이라도 죽을 텐가?


- 그리 하라시면 그리하겠습니다만,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죽음의 끝까지 소신이 보필해드려야 하니까요.




2. 회장X대표이사


신이시여! 신이시여! 여주의 부모는 광신도였다. 그렇게 부르짖던 신은 미지의 존재가 아닌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신이라는 이름을 빌려온 사기꾼. 재산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연탄 몇 개가 여주 부모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동안, 여주는 뉴스에 나오고 있던 서율 검사를 보고 있었다. 혐의 없음. 사건 종결. 열 글자도 되지 않은 단어는 여주에게서 부모를 앗아갔고, 서율에게는 차기 대표이사라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가 검찰을 떠날 때, 여주는 그를 찾아가 그렇게 말했다.

후회할 거야. 무릎 꿇고 빌게 만들어줄게.

서율은 웃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TQ의 주식을 조금씩 무너뜨린 장본인이 김여주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패배가 늘어나면 제일 엿같은 게 패배에 익숙해지는 거라더니, 이제 좀 실감이 나세요? 대표이사 명패를 만지작대는 여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 내가 패배했다고 누가 그래. 나 안 익숙해. 져 본 적이 없거든.
실력 하나만 믿고 나댄 덕에 지금 빈털터리가 되실 운명이잖아요.
- 그럴 운명에 쥐뿔도 없는 새끼 객사하는 꼴은 못 보겠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냐?

일순 여주의 표정이 굳었다 펴졌다. 몇 초도 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포착한 서율이 고개를 치켜올렸다.

- 나 죽고 살고 구르고는 이제 회장님 손에 달렸네. 그럼 이렇게 하시죠.


- 실력 말고 김여주 하나만 믿고 나대는 놈으로 만들어 줘.




3. 수습검사X검사


누구도 아는 체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 이여주의 이름 앞에는 괄호가 붙어있었고, 그 안에 든 문장은 누구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이창준 수석의 동생. 서부지검에 어떻게 왔지? 이 수석처럼 등에 칼 차고 다닐지 어떻게 알고. 시목의 사무실 앞에는 늘 그런 말소리가 지나다녔다.

아이고, 웬 신문이 이렇게. 흐허허.

가만히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여주의 곁에 선 계장이 자연스럽게 신문을 들어 제 품에 감췄다. 이창준 수석이 설계한 계획에 황시목 검사도 개입이 되어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확신에 찬 한 줄. 알아야 할 것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점심때가 됐다며 계장과 실무관이 먼저 자리를 나서고, 시목이 있는 사무실의 문을 연 여주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신문 읽으셨어요?
- 무슨 신문.
성문 일보 기사요.

내내 보고서에 시선을 주던 시목이 머리를 들었다. 무표정했지만 무슨 소리냐는 물음이 띄워져 있는 얼굴이었다.

이창준이 했던 일, 하는 일. 황시목은 다 알면서도 도왔다고.
-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잖아요.


- 내가 알고 있었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래, 달라질 건 없었겠지. 하지만 적어도 알고'는' 있었다면 그렇게 가지는 말라고 말은 했어야지. 꾹 다물어진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 복수하려고 들어왔잖아. 내가 알고 있었던 게 왜 중요하지?
복수하려고 온 거 아니...!
- 왜 내가 아무것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이여주를 제 밑에 두겠다고 한 검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제 수습검사로 삼겠다고 한 사람은 황시목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럼 알면서도 나를 수습으로 삼겠다고 한 거야?

- 수석님 그렇게 보냈으니까.


- 너 하나만큼은 진창에 안 구르게 해주고 싶어서 너 지키고 있는 거야.




4. 작가X선배


여주야, 네가 쓰는 글은 벚꽃이야. 봄에 피는 꽃 중에 제일 예쁜 꽃. 내가 아는 글들 중에 네 글이 제일 예뻐. 작은 메모지에 적혀있는 문장은 여주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 문학 동아리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가장 글을 잘 썼던 승욱은 여주의 유일한 멘토였다. 작가나 시인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사업가가 됐다고 했다.

사인회 별 거 없어요. 긴장 안 하셔도 돼요.
사람 안 올까 봐 걱정돼요.
그럴 리가 있나요. 한승욱 씨 덕분에 부수 꽉 채우고 2쇄까지 찍었는데?

데뷔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예상만큼 판매부수가 낮았다. 그녀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한 건 어느 잡지 인터뷰에서 승욱이 '인생을 뒤흔든 책'이라며 여주의 책을 소개한 순간부터였다. 그 덕에 여주는 사인회까지 열게 됐다.

마지막 분이세요.

뒤에서 일을 거들어주는 직원이 조용히 속삭이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책을 펼쳐 사인을 하려던 여주의 무릎에 무언가 떨어졌다. 벚꽃 모양의 메모지였다.


- 팬이에요. 10년 전부터.
선배?
- 벚꽃 같다는 말, 취소하고 싶어서.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어서 왔어.

느닷없는 등장에 뜬금없는 말이라 여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 네가 쓰는 글 사람들하고 나누기 싫어서 초판 발행한 거 내가 다 샀었어. 인터뷰하고 아차 했지.
...선배가 다 샀다구요? 그 많은 걸?
- 너는 사람들이 네 글 읽어주는 걸 제일 좋아하잖아. 그래서 산 건 전부 선물했어.

놀리려고 왔나. 느릿느릿 사인을 이어가는 여주가 책을 내밀었다. 이건 제 사인본이니까 어쨌든 선배한테 제일 특별한 책이 되겠네요. 그리고, 벚꽃 같다는 말 취소하고 싶단 건 무슨 소리예요? 책을 든 승욱이 웃는다.

- 꼭 벚꽃이 아니라,


- 네가 쓰는 글은 모든 계절에 피는 꽃처럼 예쁘다고. 계속 꽃 같은 글 쓰게 해주고 싶단 소리야. 내가.


분위기가 들쑥날쑥이라 비지엠 고르기 힘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곡으로 넣었어요. 날이 많이 더워졌네요. 뮤즈님들 모두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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