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한 고르기

 

 

wrt. 타인의 상실

Copyright ⓒ 2016 타인의 상실. all rights reserved.

무단복사 및 개인사용, 영리목적으로 이용시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유진 한 고르기

 

---

 

 

1. 

 

그러니까,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유진의 손아귀에 쥐어잡힌 가녀린 글래스가 흔들거렸다. 부자들의 천국은 가난한 자들에게 지옥이라고 하던데.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빅토르 위고가 한 말. 언젠가 유진이 했던 말이다. 오묘한 시선이 여주에게 닿았다. 

 

당신이 내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꼭 하고 싶었어. 이 말. 너 같은 새끼, 사랑한 적 없다고.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어떤 악의는 죽음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여주는 저를 사랑해 마지 않는다는 그가 배신감에 떨길 바랐다. 그러나 유진은 떨기는커녕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내가 지옥에 빠지길 바랐다면, 애초에 나한테 오지를 말았어야 했어요.

 

 

- 여주 씨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한텐 천국이거든요. 

 

 

 

 

2. 

 

삼류 가십지에 들락날락 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주는 이름 석자가 아닌 '유진 한의 여자'라는 타이틀로 불렸다. 개중 친절한 어떤 가십지는 여주를 '현대판 신데렐라'라는 낡아빠진 수식어로 칭했다. 누군가의 트로피로 살기 위해 좆같은 뉴욕 생활을 견딘 것은 아니었다. 가십지를 집어 던지는 여주의 손을 부드럽게 낚아 챈 유진이 재빨리,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여주의 손등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난 당신의 신데렐라가 아니야.

 

 

- 나도, 여주 씨의 왕자가 아닙니다. 난 그냥 유진 한이에요. 당신의 남자.

 

 

 

 

3. 

 

네 번의 걸친 거절 끝에, 뜻 밖에도 유진이 연 자선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인터뷰 허락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군분투가 있었나. 파티 초대라면 그의 마음이 어느정도 허락의 범주에 들어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파티에 들어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선 여주는 붉은 드레스 자락을 만지작 댔다. 초대장을 주며 유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붉은 색...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드레스 코드가 있다는 말도, 컬러를 맞춰오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붉은 색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개인의 감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개인의 감상이든 다수의 평가든 유진의 마음에 들어야만 하는 여주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붉은 색 드레스 외에는. 크게 심호흡을 한 여주는 파티에 들어가자마자 비서의 부름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초대 명단에 제가 없었나요?

 

걱정 어린 질문에도 비서는 미소로만 화답할 뿐 대답을 주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여주는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창 근처에 서 있는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저, 그게, 여기 계신지 몰랐네요. 당황해 드레스 자락을 만지는 여주 앞으로 유진이 걸어왔다. 

 

 - 붉은 색이 잘 어울린다는 거,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었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도 된단 뜻은 아니었습니다.

네?

 - 다른 사람까지 미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 나 하나면 충분해요. 당신한테 애닳아서 미치는 사람.

 

---

오랜만이에요... 오래 기다려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글 감성을 어디 팔았나봐요. 하지만 약속 드린 것도 있으니 약소하게나마 제 글을 제가 흉내내보며 유진 한으로 컴백 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논란들이 터지고 있네요. 앞으로 배우들 고를 때 더 많은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