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애정 고르기

2017. 4. 28.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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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애정 고르기







 Repay good with evil




 아십니까? 검사라는게 돈을 바라고 하는 직업은 아니라는 것을. 사실 그렇게 많이 버는 것도 아니거든요. ‘사’ 자 직업 말입니다. 사명감 없으면 못 해요. 그것이 여주가 재명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신념이었다. 천애고아로 자라, 두번의 파양을 겪고 마치 그들에게 복수라도 하듯 악착같은 시간 싸움 끝에 ‘검사’ 라는 직업을 얻어냈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재명에게 정치싸움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 그렇게 보지 마세요. 늘 말했지 않습니까? 나는 항상 이사님께 감사한다고요.



 그런 재명의 치기어린 사명감을 높이 주고 산 것은 여주였다. 금맥에서 태어나 모자름이 없이 자란 여주에게 재명은 분명 구미를 당기는 인간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라더니.


 - 짐승인건 알아보시네요. 



 여주의 회사를 쥐고 흔든 것은 재명이었다. 재명의 순진무구함에 속아 아무것도 모른 채 많은 것을 노출시킨 것이 원인이었다. 언제 바닥부터 치고 들어와 머리를 흔들 생각을 했을까. 



 네 위로 줄도 붙여주고, 뒷배경도 되어 줬어.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거둬준 내 등을 떠밀어. 


 - 두려움은 그 상황에 놓였을 때 생기는게 아니에요. 되려 곤란한 상황에선 사람은 기지를 발휘하죠. 이를테면 키워준 주인을 물어서 내 힘이 얼마나 센지 알아보기라던가. 


 너 하나쯤 없다고 내가 곤란해지겠니.





 - 곤란해지죠. 



 재명의 웃음 속에는 자신감이 들어있다. 다 줘도 마음만큼은 안된다. 새겨 들어. 제 어머니가 습관적으로 했던 말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사랑하잖아요, 서로. 나만 그랬나? 나만 이사님 사랑한겁니까?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그런 적 없노라고 거짓을 고한다. 이사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여주가 느즈막히 고개를 든다.



 - 이젠 상황이 반대 아닙니까? 


 - 그러니까 우리 처음에 그랬듯이,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얌전하게 사랑하자고.





 - 그 머리 검은 짐승이 다시 이빨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법 없으니까.










 Wield absolute power 



 다 자란 성인을 입양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가문을 잇는답시고 사내를 들이는 것이 아닌,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를 들인다는 것은 더더욱. 제 아비랑 단 둘이 살았는데, 타지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더군. 조회장이 입양을 한 이유는 간결했고, 그 뒤에는 음습함이 있었다. 사고였나봐요. 태오의 목소리에 조회장은 그저 어깨만 으쓱거린다. 그래, 당신이 「사고」 로 죽였겠지. 특허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완강한 그 남자가 마음에 안 들었을테니까. 



 - 아버지가 실수한건 내 나이를, 그리고 네 나이를 잊었다는거야.


 오빠. 


 - 그저 술이나 진탕 마시고 계집질이나 할 줄 아는 짐승이.





 - 스물을 훌쩍 넘긴 여자를 어떻게 동생으로만 봐.



 태오가 걱정하는 것은 제 위치에 대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저 같은 호적을 나눠쓰며 여동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여주가 언젠가 제 아비처럼 객사를 해버릴까 전전긍긍했다가도 저를 거부하고, 때때로 자신에게 혐오의 빛을 띄는 눈빛에 어쩌면 자신이 카나리아 같이 작은 여주의 몸뚱이를 분질러 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 발레 배우고 싶다고 얘기했다며.


 어렸을 때 부터 하던 거라고 말했잖아. 이 집에 오고 나서 눈치 보느라 말 못 했어.


 - 소중하겠네.



 주어가 잘려나갔음에도 여주는 태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안다. 제 몸을 지탱하는 다리. 피아니스트에게 손이 생명이듯, 발레리나에게 다리가 생명이라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다리라도 자를 것 같아서 그래? 여주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춰봐. 짧게 터져나온 목소리에 고개가 갸웃 거렸다.





 - 내 여동생 노릇이 싫으면 춤추는 인형노릇이라도 해야할 거 아냐.


 … 내가 무슨 노릇을 해야 돼?



 아아, 빙긋이 지어보이는 웃음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 안 그래도 죄당만사한 자식 어떻게 내치고, 쫓겨낼까 궁리하시는 아버지 안 쓰러워서 어쩔 줄 몰랐는데. 이참에 결혼이라도 할까봐. 영문모를 소리에 여주가 무슨 소리냐 묻자 태오가 다시 웃는다.



 - 여동생 노릇도, 인형노릇도 싫으면 그거 밖에 없잖아. 


 ….


 - 내 첩노릇이라도 해야지.


 미쳤어?



 놀란 눈으로 되묻는 여주의 물음에 태오는 그저 웃어보일 뿐이다. 



 - 재미있을거야. 첩노릇은. 





 - 그땐 네 몸 하나 탐한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 없으니까.










 Amour Fou



 깎아 지른 듯한 외모에 하자가 있다면 그것은 표정이다. 남부럽지 않은 배경에 흠이 있다면 그것은 날 때 부터 제 것이 아니었단 것 뿐이다. 타인에게 윤양하는 선망의 대상이나, 저 자신에게는 언제 꺾일지 모르는 라넌큘러스같은 사람이었다. 불안이 삶을 옥죄면 자신말고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 긴 세월동안 양하를 둘러싸던 불안의 껍질을 깬 것은 여주였다.



 내 자리 뺏으니 이제 행복해요?





 - 뺏다뇨. 난 당신에게 그 자리를, 그 회사를 선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주의 눈에 증오가 서린다. 윤이사님은 제 이름 앞으로 해두고 주는게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양하의 미소에 여주는 약이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대표 이여주’ 라는 이름 뒤에 숨은 대주주 윤양하. 제 것이면서 제 것일 수 없는 회사를 주는 것이 어찌 선물이란 말인가.



 - 날 받아들여요. 그러면 당신 회사 뿐만 아니라 H건설까지도 당신의 것이 될테니까.


 결국 당신 옆에서 트로피 노릇이나 하란 소리군요. 


 - 트로피…. 네, 아마도요. 유리벽장 안에서 얌전히, 저녁 때만 되면 내 손길 기다리는 트로피라면 맞아요.


 그래서 내가 당신을 증오하는거야.



 양하의 눈가가 잠시 파들거렸다. 난 당신 트로피 노릇하려고 여기까지 악착같이 오른거 아니거든. 제 앞에 있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여주의 존재는 끊임없이 양하를 골몰하게 했다. 





 - 난 당신이 왜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지 알고 있어요.


 .


 -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사실상 시한부나 다름없는 어머니, 유전병으로 언제 시한부가 될지 모르는 동생.


 .


 - 손에 쥐지도 못할 만큼 가져놓고도 만족을 몰랐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A병원의 대주주인게 기쁘군요.



 순간 여주의 손이 멈칫한다. 아무런 조건없이 지원해주는 주주가 있다면 어느 병원을 가던 환영하겠죠.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여주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락으로 치미는 어두운 기색을 느꼈다.



 - 나랑 거래 할까요?


 - 당신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신.





 - 내 옆에서 벽장에 갇힌 트로피 노릇을 하기로.










 He who touches pitch shall be defiled therewith



 해영이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두운 것에 가까이 둔 백색의 것이 곧 어둠으로 물들 듯이 해영은 어느순간 속이 새카만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권전무라는 인간에게 돈푼 깨나 받았던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해영의 직위를 올려줬던 순간이었을까.



 - 좁은 곳으로 잘도 도망다니시네요.


 박해영 경위…, 아니 경감님. 





 - 골방에 자기 몸 하나 겨우 움직일 방이라… 제가 못 찾을 것 같았어요?



 언젠가 그가 자신의 영웅이던 적도 있었다. 되풀이되던 가정폭력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을 때, 자신을,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라는 이름의 악마를 구해준 것이 해영이었으니까. 허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었다. 해영은 다른 방식으로 여주의 목을 옭아매려하고 있었다.



 당신 변했어요.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 아뇨, 원래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여주씨가 속은 거예요. 착한 척 가식떠는 위선적인 얼굴에.


 나한테 뭘 바라는건데요?


 - 스무고개인가요? 재밌네요.



 여유로운 미소에 여주가 눈을 질끈 감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가진 것 없는 자신. 왜 그렇게까지 자신에게 집착하고 매달리는지, 왜 자신을 벼랑으로 밀어넣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다. 여주가 물어봤자 웃으며 ‘재밌으니까.’ 라고 대답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 경찰이 좋은게 뭔지 알아요?


 이렇게, 어디든지 날 찾아오는 거….


 - 맞아요. 그리고 하나 더.



 재미있다는 듯 웃는 얼굴에 불안한 기시감이 고개를 든다. 아, 거기에 등에 진 돈까지 많으면인가? 누군가에게는 해사한 웃음임일테나 여주에게는 반야의 그것과 같았다.



 - 언제든지 손가락질 하나로 당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 나, 여주씨 목숨 스위치 껐다 키듯 살렸다가 죽일 수도 있어요.


 - 살고 싶어서 내 손 받아들인 순간부터,





 - 당신 목숨은 내 것 이였어.







 Q. 오늘은 왜 윤오가 없나요? A. 오늘은 극 중 캐릭터 고르기 입니다. 후후... 유입경로 중에 <타인의 상실 조태오> 라는 키워드가 있었어요. 사실 태오는 제 글에 등장한 적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할까u.u... 비중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보고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나 싶어서 오늘은 태오도 넣어봤습니다. 사실 시그널하고 베테랑 밖에 안 봤는데 은근슬쩍 끼워팔기고요... 임시완분 캐릭터 잘 어울리네요. 내가 썼지만 마음에 드는건 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글쓰니까 글쓰는 법 다 까먹었어요. 그래서 엉망진창이예요. U.U...! 글 보면 여주인공은 존댓말하고 남주인공은 반말하는 불평등한 구조가 많은데 오늘은 둘다 존댓말/반말하는 관계로 만들어 봤어요. 아! 김재명 제외.ㅎㅎ. 여주의 사회적 위치도 생각해보고. 그래봤자 (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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