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욕망 고르기

2017. 5. 1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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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욕망 고르기






 구원의 서



 모자름없이 자라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넘쳐나는 자는 되려 약하고 흔들리기 쉽다. 재력가였던 아버지를 무너지게 만든 것도 사이비였다. 저가 결단코 틀릴 리 없다는 자만같은 자신감을 가진 자들은 오히려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교단에 들어선 여주는 끝까지 제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 대답한 것은 공인된 신도, 아버지도 아닌, 정의의 이름을 빌린 ‘검사’ 였다.





 - 단순히 회장 딸이었다면 난 당신한테 관심 없었을거야.



 그 언젠가, 교단에서 도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내달리다 끌려와 절대 악의 헌신이라는 그럴 싸한 이름 아래 새겨진 깊게 패인 상처에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족쇄같은 상처보다 그림자가 더 두려웠다. 제 앞에 앉아 푸른 빛을 띄는 공무원증을 건 남자가, 마치 살인면허를 쥔 악귀로 보이는 탓이었다. 



 - 구원이라는게 말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다는 뜻이지, 그 사람을 천국에 데려다 준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여긴 나한테 그곳이랑 다름없는 지옥이예요.




 - 알아요. 그래서 난 당신이 이 지옥 속에서 더 불행해지길 바래.



 창살없는 지옥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정우가 내민 수사보고서 속에서 여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미친 광신도 들의 손에 이끌려 불에 타 버린, 가엾고, 무고한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그가 영원히 여주의 흔적을 지워버린 까닭이다.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당신이 죽여버렸으면 됐잖아.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만들었으면 그걸로 된거 아냐?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절대 외면하지 못 하는게 뭔지 압니까?


 ….


 - 구원이야. 언젠가 자기가 이 지옥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누군가가 나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믿음.



 깊게패인 상처의 환상통은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아픔으로 둔갑하여 마음을 찌르는 것보다 곧장 제 몸을 바닥으로 쳐 밀어버릴 것 같은 실재하는 감각이 새로운 두려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 난 여주씨가 더 불행하고 불편해졌으면 좋겠어. 진흙탕에 빠져 머리까지 다 잠기고 난 후에야 살기위해서 손을 뻗는 그 순간이 나한테는 리비도니까.










 鬼



 그 자는 구신이다. 암, 인두껍을 쓴 자가 그리 잔혹할 수는 없을게야. 여주야, 할미말 듣거라. 그곳은 두번 다시 가지마. 그곳은, 그곳은…. 땀에 젖은 하얀 이마가 달빛에 반짝인다. 오늘도 그 꿈이다. 그 구신이라는 자가 할머니를 삼도천 너머로 보낸 날, 여주는 할머니가 그를 왜 ‘구신’ 이라 부르며 치를 떨었는지 알게 되었다.





 - 잠자리가 영 어색한가보오. 그러니 내 품에 안겨 자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는 것인데도. 



 꿈을 꾸고 나면 항상 수혁이 발치 아래에 앉아있었다. 이따금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다가도, 새우니 꼴이 된 자신이 흥미로운 듯 웃으며 바라보는 것이 영락없는 구신의 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여주가 이불을 끌어당겼다. 방의 끄트머리에 등을 맞대놓고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손이 부들거렸다.



 - 어찌 피하느냐.


 저, 저는 다, 단지….


 - 내 눈이 닿는 곳에 네가 피할 곳이 있다고 생각하는게냐.



 여주가 곧장 도리질을 친다. 저 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눈을 감아도 천리안을 가진 자다. 애써 아닌 척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은 여주가 숨을 가다듬었다. 단지, 야구자가 나오는 몽을 꾸어서 그렇습니다. 파랗게 질린 손을 잡는 수혁이 손등을 어루만진다. 짧은 손톱이 짓누르는 감각에 절로 우는 소리가 새어나올 지경이었다.



 - 나는 그대가 맞다 하는데, 그대는 어찌 내가 아니라 하오? 


 보잘 것 없는, 계집… 입니다. 저는….


 - 내가 천하고, 천하가 내 발 아래 있는데 그대는 그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까?


 ….




 - 이젠 갓난쟁이 목숨까지 뺏어야 내 말을 듣겠소?



 일순 들려 올라간 얼굴 속에 두려움이 섞인다. 여주에게는 이미 삼도천을 건너버린 할머니와 젖동냥을 해야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갓난둥이 동생이 전부였다. 제가 죽어야 제 동생을 살려주시겠습니까?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무릎 꿇고 비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 보는 수혁이 입을 뗀다.



 - 그대의 목숨 또한 내 것이라는 걸 잊었소?


 - 잊지 마시오.



 - 그대는 내가 탐하면 그 손길에 얌전히 유린 당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요.










 짐승의 끝



 그가 돈보다 사랑하는 것은 자신감이었다. 한평생 형의 그늘에 눌려 겁쟁이로 살았던 것을 떠올리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재산이었다. 차민호가 사랑하는 것은 부모의 아가페적인 사랑도, 형제애도 아닌 성당에서 튀어나왔다. 수녀가 될 아이로 품었으나, 이 아이는 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자랄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천애고아지만, 신의 사랑을 받고 자란 여주를 거둬 주세요. 이제 막 어른이 된 여주는, 만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원장수녀의 애정어린 부탁에 민호의 손에 넘어가 비서가 되었다.





 - 경호실장이 그만뒀다죠? 참 안됐어요. 결혼까지 입에 올린 사이에 하루 아침에 직장은 그만두고 잠적을 했다니.



 여주는 짐짓 못들은 척, 모니터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케쥴. 스, 케, 쥴. 단어들을 하나씩 나열하며 민호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헛된 노력은 어깨 위에 살포시 오른 손바닥에 의해 저지되었다.



 - 잘 살고 있을까? 박실장.


 ….


 - 아니지, 살아는 있을까요, 박실장이?


 부사장님…. 


 - 아, 걱정 말아요. 난 내가 좋아하는 건 안 죽여.



 안심하라는 듯, 어깨를 두드리는 손에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압박이 들어있었다. 봐요, 내가 언제 이 자리를 떠난 적이 있었나. 살아있는 거라면 못 견디는 내가, 여주씨가 준 스타티필름은 금이야 옥이야 기르고 있잖아? 살풋이 지어올리는 웃음에 여주는 애써 시선을 피한다.





 - 손에 묻은 피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며 샤워기 아래서 엉엉 우는 여자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참 이상해, 안 그래요? 


 저, 잠깐 회의실 다녀오겠…!


 - 어떻게 그걸 끔찍하게 여길 수가 있지? 난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죽일 때 마다 즐거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당신 미쳤어. 그리 길지도 않은 문장이 목구멍에서 요동치는 이유는 뒤에서 어꺠를 쥔 자가 언제 자신을 죽음의 끝으로 밀어넣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 그러니까 애꿎은 사람한테 남의 목 따는 것만 시키지 말고 얌전히 내 옆에 있으면 좋잖아.


 -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여주씨.




 - 그땐 네 세상에 오로지 너랑 나만 남는거야.










 



 배움을 갖고자 하는 이를 가르치는 기쁨은 어디서 채울 것인가. 여주의 물음에 기꺼이 화답한 것은 과외였다. 가족을 모두 이국 땅에 두고, 한국에 홀로 남았다는 경수는 자신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을 찾았다. 어쩌면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학문 따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배움을 열망하던 그 눈빛의 퇴색에서 잠시 향수를 느꼈다. 경수는 더 이상 배움이 필요한 18살 소년이 아니었다.





 - 선생님 덕분에 환영회도 잘 다녀왔어요. 


 경수야, 그럼 이제….


 - 소원… 들어주시기로 한 거, 기억 하세요?



 여주는 눈을 내리 깔았다. 소원. 차라리 사귀어 달라는 치기어린 소년의 바람이라면 자신이 감수를 하더라도 성년을 맞은 그와 연애를 했을 수도 있었다. 경수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연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기억 안나. 짧게 터져나온 목소리에 경수가 피식 웃는다.



 - 이젠 제가 선생님을 가르쳐야 겠네요.



 여주는 자신을 파블로프의 개라고 생각했다. 위태로이 휘어 올라가는 눈꼬리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목소리가 귓전에 울릴 때면 늘 그랬다.


 「선생님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누구도 구해주지 않는 나락에서 나 하나만 기다리며 망가지길 바래요. 그러면 오롯이 나로 가득차서 나 아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테니까.」 


 반사적인 말은 다시 되풀이 된다. 안 돼. 그리고 늘 그렇듯이 같은 대답이 나온다. 





 - 언제까지고 제 선생 노릇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하셨죠.


 그래, 그것도 벌써 2년 전이야.


 - 알아요. 더 이상 제 과외선생 노릇하실 필요 없어요.



 경수가 법대를 원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저는 심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못된 것들을, 사회와 정의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내 손으로, 직접. 삼켜진 뒷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선생님이 하실 수 있는 두가지 일에 선택권을 드릴게요. 


 - 내가 만든 지하감옥에 갇혀서 죽어가던지,




 - 아니면 나 하나만 아는 밀랍인형이 되던지.






 1. 정의에 도취되어 구원의 의미를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검사.

 2.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사람을 고립시키는 군주.

 3. 존재의 이유를 입증하기 위해 살생과 고립을 마다않는 부사장.

 4. 첫사랑을 기억에 간직하지 못한 채 실소유 하려는 미성숙 어른.


 모두 그릇된 욕망의 발현입니다. 박정우, 차민호는 리퀘받은 인물이예요. 부도덕한 박정우, 싸이코패스인 차민호의 모습으로 보고싶다 하셨는데 잘 표현이 됐는지 모르겠숨다... 제가 드라마를 안 봐서 캐릭터 설명만 보고 썼기 때모네... TㅅT.... 참고로 차민호가 언급하는 영화는 <007 카지노 로얄> 속 에바그린이 등장하는 씬이예요. ㅎㅎ 그 씬의 비하인드가 너모 웃긴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기니까(?) 저만 알고 웃도록 하겠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 ,, 우리 윤ㅋ오,, 매 글마다 등장시켜주기로 했는데 꽝! 다음 기회에 되었네... 리퀘는 많이 받았는데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글이 늦더라도 기다리지 말아주세요. 흐흑...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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