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고르기

2017. 3. 17.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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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고르기






 황제를 위하여



 - 어렸을 때 말이야. 이제 막 열댓 먹었을 무렵.



 슬금슬금 귓전에 와닿은 목소리에 여주는 애써 못 들은 척 애꿎은 얼음만 들쑤셨다. 목소리가 어른어른 떠도는 것을 보니 진 몇잔에 잠시 추억이라도 판 모양이다. 여주는 재욱이 술에 취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싫었다. 차라리 음험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이토록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을. 자꾸 제게서 어릴 적 순수함과 양순함을 찾으려는 그 그리움의 눈동자가 치가 떨릴정도로 무서웠다.







 - 황제가 되고싶어했던 어린 여자애가 있었지. 공주나 여왕따윈 바라지 않았어. 황제가… 되고 싶다고 했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이제는 있지도 않은 유약함을 어떻게서든 찾기위해 아등바등 추억을 건지려는 말일 줄 알았지.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들어가서 잔다. 당신 먹은 건 나 보기 전에 알아서 치워. 거칠게 뒤돌아선 등에 재욱이 슬그머니 목소리를 다시 흘렸다.



 - 타고난 기질에 개처럼 일하는 남자 하나면 황제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지.


 그래서, 개처럼 구른 10년이 아깝다 이거야?


 - 황후자리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여주의 입술이 깨물린다. 보고있는 것은 그저 등임에도 그는 여주의 표정이 어떤지를 지레짐작한다.



 - 어디 구석에 쳐박아두고 생각날 때면 한 두번 찾아가서 생사 확인정도나 하는 후궁.


 ……….




 - 사랑하지 않지만 곁에 둬야하는 네 남자라는 허울…. 그거 하나면 돼.










  여왕의 눈



 그녀만큼 여왕이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태어날 적부터 제 위로는 사람을 두지않아 시선을 치켜 올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 모든 것을 제 발 밑에 깔아두는 사람. 여주는 크리스틴을 여왕으로 보았다. 타고나기를 소심한 탓인가, 여주는 크리스틴을 마주볼 때면 곧잘 시선을 피하곤 했다.



 - 여주.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여주는 괜스레 긴장한다. 크리스틴의 목소리에는 담배향이 난다. 쾨쾨하고, 지저분하고, 어딘가 사람을 뒤흔드는 중독적인 향. 늘 그렇듯 제게서 피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수그리는 여주의 행동에 크리스틴이 짧게 한숨을 내뱉다 이내 손을 뻗어 여주의 턱을 치켜올린다.





 - 내가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건 처음이야.


 ….


 - 항상, 내 시야 위에, 시선 위에 있는 것도 네가 처음이고.



 위로 말려 비틀어진 웃음도 크리스틴이 지어보이면 심연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날 여왕이라 부르는게 네겐 걸림돌인거지. 그리고 그 심연을 파고드는 웃음은 진심도 뚫어볼 줄 알았다. 





 - 내 여왕은 너야.










 도련님



 그가 호텔을 물려받았을 때, 비로소 출가외인이 될 수 있었다. 한 평생 바르고 선한 아들로 자라온 아들. 글자 그대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 윤오는 제 부모에게 한없이 착하고 정의로운 아들일 뿐이었다. 





 - 선생님, 일본 사람들이 왜 겉과 속이 다른지 알아요?


 네 선생노릇 끝낸지가 언젠데 아직도 선생님이야.


 -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 몰살 당했거든요. 도망칠 구석이 없는 섬사람들은 항상 화를 참으며 사는 버릇을 들였어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상냥하고 착하지만 속으론 어떤 저주를 퍼붓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여주는 윤오가 뱉은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인간은 동전 같은 거잖아요. 착한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고. 일종의 양면성같은. 배싯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목소리가 이토록 소름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어깨 위로 오른 가느다란 손가락이 위로라도 하는 양 토닥거린다.



 - 선생님이 불행하길 바래요.



 순진무구한 웃음의 빛이 백색이 아니란 것쯤은 안다. 까득까득 웃는 목소리에 담긴 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또한. 



 - 불행하고, 또 불행해지면 이제 윤오야, 나는… 하면서 날 거절하지 않을테니까.


 …윤오야, 나는….





 - 바닥까지쳐봐야 알지. 그땐 먼저 안아달라고 애원하게 될거야.










 파괴욕



 그는 유독 아름답다는 말을 즐겨하곤 했다. 그가 찬사하는 아름다움은 풍경이나 예술품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여주만을 위한 말이었다. 마치 그 단어가 여주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단어의 존재의 이유가 오로지 여주라는 것처럼 여주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 예술가들은 까다롭단 말이야. 



 사실 그 알 수 없는 속내가 예술의 밑천인지도 모르겠어.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지점에서 나오는 것들을 사랑하지.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여주를 보며 웃는 매즈가 잔을 내려놓았다. 





 - 제 마음에 드는 완벽함이 탄생할 때 까지 끊임없이 부수고, 만들고, 부수고….


 ….


 - 아름다움이란 파괴에서 시작하지.



 아무런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었다. 아득한 시선에 가득 찬 눈동자 색을 말없이 바라보던 여주가 조용히 시선을 거뒀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사람은 파괴하면 죽는다는 것 쯤은 나도 아니까. 긴장을 덜어주려는 말에도 떨리는 손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식탁 밑에 한 손으로 쥐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가요, 하고 뱉어내자 매즈의 웃음이 들려왔다.



 - 하지만,





 - 언제든 네 아름다운 순수함을 파괴할 수도 있지.






 *경축*


드디어 새글이에요. 글을 쓴지 너무 오래되서 4명쓰는데도 세시간이나 걸리네... 어떡하지 ◐_◐

 취향적 인물들 모음이라고나 할까... 윤오는 슬쩍 끼워팔기. 여러분 엔 시티하세요...

 그을린사랑은 동명의 영화에서 따온 제목인데 글은 왜 그을린 사랑인지 1도 모를 정체불명ㅋㅋㅋ

 영화는 너무 충격적이었던걸로 기억하는 것이네요.. 따흐흑... 내 멘탈...

 아무튼 새글로 찾아뵙게 되어 반갑고 그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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