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의 로맨스 고르기

2017. 3. 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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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의 로맨스 고르기






1



 그래, 어쩌면 멍청한 것은 나인지도 모르겠어. 그저 빛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반질반질 윤이나는 진주 귀걸이 두 쪽을 내다보던 중에 문득 든 생각이었다. 애초에 속은 내가 잘못이겠지. 덤덤하게 귀걸이를 양 쪽 귀에 꽂아넣고, 립스틱을 집어들고 거울을 응시했다. 역시 거울 속 여자는 초라하다. 





 - 사교 스케쥴은 없으신 걸로 아는데, 어디 급히 가십니까?



 저너머의 남자의 목소리가 조롱으로 들리는 것도 내가 꼬여서일테고. 온갖 비싼 것들로 치장하고 색을 내봐도 본질은 초라하다. 바람난 남편이 대놓고 첩을 끼고 살아도 떠나지 못하는 우둔한 아내. 다른 남자들의 손길조차 받지 못 하는 볼품없는 여자. 굳이 거창한 수식이 필요없는, 나였다.



 이대로 떠나서 안 돌아올까 생각 중이에요. 


 - ……….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발목이 시큰거렸다. 말은 그렇게해도 역시 여전히 나는 겁쟁이구나. 아무말 않는 걸 보면 내가 다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 기쁘군요.


 뭐가요?


 - 대표님께 여조 아가씨를 소개시켜드렸어요. 제가요.



 이번엔 타인의 공격으로 인한 휘청임이었다. 당신이… 왜요? 떨림을 지운 목소리에 대한 화답은 환한 웃음이었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데 바람에는 바람으로 되갚아야하지 않겠습니까.


 ……….


 - 어떻게 할까요, 사모님.





 - 저랑 눈 맞추고 바람 피우시다가 나중엔 마음까지 맞아서, 아예 사랑까지 해보시겠습니까?







 2. 



 범람하는 해일 속에 갇힌 인간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구원의 손길. 몰락한 집안의 재투성이 금지옥엽 고명딸로 자란 내게 빛을 내려줄 수 있는 것은 나보다 위에있는 이의 손길 뿐이었다. 그것은 잡고 오르기만 해선 안됐다. 다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 넌 어쩜 그렇게 착하고 오만할까.


 착한건 재미없고, 오만하면 건방지다고 눈길 안 줄까봐.


 - 불안해? 


 넌 그게 나랑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하니?



 얼핏 코웃음을 내비쳤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입에 풀칠은 못 해도 양반은 양반이다. 몰락해도 귀족은 귀족이고. 내게 걸맞는 것을 걸쳐 입으려면 그에 맞는 몸을 가져야 했다. 어거지로 얹어놓은 저 다이아가 도망가지 않게 하려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 네 존재 자체에 흥미를 잃고 지겨워지는 날이 올거야.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로 마음을 찌른다. 결국 나는 표정을 다잡을새도 없이 불안감을 그대로 노출해버리고 만다. 



 - 그래, 그거야. 그 표정이야.


 …뭐?





 - 넌 나한테 버림받을까봐 불안해 할 때가 가장 예뻐.







 3.



 처음 봤을 땐 금괴덩이가 품 안으로 달겨든 것 같았다.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전형적인 귀족층 집안 도련님. 샐샐 웃는 얼굴로 어설프게 문제를 풀어가던 에지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선의 굵기를 더해갔고, 그와 동시에 잠재되어 있던 음험함과 욕망을 분출해갔다.





 - 결혼한단 이야기 들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래. 내 고향이잖아. 교수직도 내려놨어. 더 늦기 전에 가야지.


 - 선생님은 언제나 정확한 답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네요.



 나는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혼기가 지났다며 닦달하는 엄마의 성화에 대충 조건맞는 남자에게 아무렇게나 시집을 가기로 결심한 것은, 내가 누군가의 손아귀에 넘겨져 영영 남이 되어버린다면 나를 떠날거란 막연한 희망감에 차있는 불완전한 확신 때문이었다.



 - 정답은 늘 정해져있는데 왜 자꾸 먼 길을 돌아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 잖아요. 애초에 정해진 답도 그거니까.


 ……….


 - 선생님은 내가 잡아주길 바라는 거에요.



 확신에 찬 눈동자가 불안감과 마주치자 거칠은 빛을 냈다. 틀렸어요? 역시, 처음 생각한 답이 늘 맞는다니까. 비싯거리는 입꼬리에 두려움에 내리 앉았다.





 - 내가 선생님을 가져주길 바란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줘야지.







 4.



 적어도 네 앞에서만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가난하고, 어려운 대학생. 그거면 충분했다. 윤오에게는 내가 필요했고, 나는 윤오의 존재를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야 했으니까.





 - 어제 전공교수님한테 조교제의를 받았어. 아무래도 좋은 기회 같아.



 어둠에 몸을 불사르는 무모한 이가 없듯이, 사람은 응당 밝은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었다. 윤오는 밝고 쾌활했다.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아이였다. 그래, 잘됐다. 축하해. 그 말은 머릿 속에만 맴돌 뿐이다.



 너, 그래서 그거 할거야? 일은?


 - 누나 또 왜 그래.


 너 정말…. 이런 식으로 나한테 결정해놓고 통보할거면 그만 두자고 했잖아. 아니, 차라리 그만 둬. 헤어져.



 사실 내가 유치하고 졸렬하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윤오가 과대를 맡고, 학생회장을 하겠다는 것을 기를쓰고 반대를 했던 것이다. 사람들 틈에 섞이면 언젠간 떠나버릴까봐. 나는 또 혼자 남겨져 누군가의 옆자리를 그리워하게 될까봐. 헤어지면 잘 살 자신이나 있고?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에 입술이 부들 거렸다.



 - 우리 관계에서 누가 더 간절한지 몰라?


 ……….





 - 자꾸 이러면 사랑해 줄 자신은 있어도 착하게 예뻐해 줄 자신은 없어.







 5.



 태어나는 것은 타인의 의지였으니 죽는 것쯤은 자신의 의지였으면 했다. 행복하자. 죽어서 말이야. 넘어갈 듯, 말 듯한 숨이 다시금 불이 붙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이런, 저승밭 굴러다니게 만들기엔 너무 아깝잖아. 푸른 눈동자를 가진 저승사자와의 첫 대면은 강제적 소생에 의해 이뤄졌다.





 - 언제까지 날 외면할 셈이야.


 네가 날 얌전히 죽게 놔둘 때 까지.



 미련을 버리고 떠난 삶에 억지로 붙들려 있어야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 차게 굴지는 말아라. 슬긋 눈치를 보며 말을 하면서도 죽게 만들 생각은 없으니 어찌 고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겠느냔 말이다. 



 법왕의 손에 죽었으면. 아주 잔혹하게.


 - 네가 그리 말하지 않아도 돌아가면 끔찍한 형벌을 받을거다.


 그러니까 날 다시 데려가라고.



 저승사자 앞에서 나를 데려가라 애원하는 이가 몇이나 있으려나, 싶다가도 그런 것 따위 알게 뭐냔 마음이 우선이다. 어김없는 애원섞인 분노에 저승사자가 고개를 휘젓는다. 오늘도, 역시, 아니란 소리다. 너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그래? 그러면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 그저 이름 석자를 세번 부르면 바스라지는 몸뚱이를 어찌 소중하게 간직하겠느냔 말이야.





 - 사랑한다, 너를. 나를 버려서라도 너를 사랑해.







 페미니스트라 선언해놓고 여성이 억압받는 구조의 글을 쓴다면 언행일치가 안되는 거겠지요. 사실 제가 쓴 글들 중에 백델테스트를 통과할 만한게 있을지 의문이에요. 고르기라는 하나의 장르자체가 내가 주인공으로서 남성을 선택한다는 지점에서 남성을 위주로 돌아가는 구조지만요. 집착하고, 완전하지 못하며, 데카당스한 글들은 미소지니로 점철되어 있다고 생각 하지만... 이게 제 길티플레져인 것임은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슬픕니다. 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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