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의 유일한 신 고르기

2017. 2. 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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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유일한 신 고르기








 옥황상제 하정우



 저승차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인간계의 사법고시보다 더한 천계고시를 치루고 난 후에야 옥황상제의 곁에서 일할 수 있는 천사가 되었다. 다소 꼬장꼬장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천계를 다스리는 옥황을 뵐 수 있다는 사실에 첫날 상당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대가 나를 보필해줄 2338번째 천사인가.



 옥황의 외모는 천계의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내가 지옥으로 발령받은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 얼굴이 왜 그래요.



 감히 옥황상제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지만 첫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에 망발을 했다.



 뭐. 내 외모에 불만있느냐?

 - ……너무 성스러우셔서.



 옥황은 꼬장꼬장한게 아니라 쪼잔한 인물이었다. 첫인상평에 상당히 마음이 상했는지 그날 이후로 일이랍시고 유별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천도복숭아가 먹고 싶구나. 따오거라. 직접.

 …예?

 그 희나리처럼 고운 손으로 따오라 일렀다. 한 땀 한 땀.



 심부름 시켜놓고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졸졸 쫒아와서는 결국 자기 손으로 복숭아 따고 가지치고 가지가지 하는데, 저가 먹고싶다 해놓고 나한테 먹이는 것을 보면 나를 놀리려 드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 상제님께서는 안 드세요?

 나 복숭아 알레르기. 털 달려서 싫다.

 - …아깐 드시고 싶다고….

 핑계니라.

 - ……….

 그래야 같이 나갈 수 있지 않느냐.



 다른 천사들은 차사들 관리하고, 하급천사들부터, 인명부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옥황의 수족이 되어 노예12년의 현실판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단이는 눈치가 없구나.

 - 또 무엇이 필요해서 그러십니까?

 이봐라. 이봐.



 이봐라고 여봐라고 간에! 일 끝나고 가려는 사람 붙잡아다 달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옥황이 대뜸 한숨을 쉰다.



 인간들은 달 뜬 새벽이면 진심을 전하고는 한다던데.

 - 마음을 끄는 힘이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요.



 옅은 웃음을 지은 옥황이 고개를 돌렸다.



 나의 달.

 - ………."

 나의 달, 여주.

 - 무슨….

 내 마음에만 뜬 달이라 이토록 내 마음을 끄는 것이냐.



 옥황 옆에 뜬 만월이 유독 빛을 내면서 옥황의 옆 얼굴을 빛춘다.







 좋아해도 되겠느냐?

 - ……….

 아니, 이미 좋아하고 있으니 달리 묻겠다.

 - ……….

 너 또한 나를 좋아해줄 수 있겠느냐?



 옥황의 옆통수에 자리잡은 만월 속, 달나라를 관망하는 신 묘신이 회중시계를 흔든다. 새벽 두시. 진심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염법왕 (염라) 강동원



 이른 나이에 사고로 죽게 된 나는 망각의 강을 건너자 마자 새까만 도포를 뒤집어쓴 이상한 남자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남자는 자신을 염법왕이라 소개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납니까?

 - 아뇨. 사고였지만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어요.

 노력을 많이 했지. 대신 같이 죽은 인간은 당신의 고통까지 짊어졌겠지만.



 염법왕은 의미모를 말들을 많이했다. 이름이 범상치 않은 걸 보면 살아생전 박수무당이었던 모양이다.




 살아 있을 때… 뭐 이상한 기운이나 느낌 없었습니까?

 - …귀신같은 게 따라다니는 것 같아서 퇴마사랑 무당 찾아간 적은 있어요. 근데 가는 족족 무릎꿇고 절하고 그래서 난 신내림 받아야되는 줄 알았잖아요.

 지켜보고 싶었거든요. 죽음의 고통을 덜어줘야하기도 했고.

 - 오는 내내 이상한 말만 하시네요.



 염법왕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죽음을 인지했을 때, 저승사자라고 소개한 차사가 염라대왕에게 가려면 수난과 고행의 길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남자랑 함께 하는 내내 수난은 커녕 꽃길만 걸은게 좀 신기했다.



 - 근데 염법왕씨도 염라대왕 찾아가시는 거죠?

 자리를 찾아가긴 합니다.

 - 차사라는 분이 고난의 길이랬는데… 저승사람들도 거짓말을 하나봐요.

 아니오. 차사의 거짓은 곧 악행입니다.

 - 근데 우리 계속 꽃길만 걸었잖아요?

 내 사람에게 어찌 고난과 험난한 고행을 주겠습니까.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염법왕은 허리를 굽히고 나와 눈을 맞췄다.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서 피한 내가 걸음을 빨리하자 금세 따라온 염법왕이 주먹을 그라쥔다.





 찰나의 시간이 아까워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택했건만 강림이 술수라도 쓴 모양이군.



 길의 끝에 선 염법왕이 별안간 문을 막고 섰다. 딱딱 소리에 염법왕의 도포가 까만 용포로 변했다.



 그대가 만날 염라는 염법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 …서, 설마….

 명부를 본 순간 마음이 다급하여 자리도 잊고 그대의 뒤만 따랐습니다.



 염법왕의 가슴에서 빛나는 흑룡이 시야에 가득 잡혔다. 머뭇거리던 염법왕은 환생과 천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옥에서는 둘다 어렵고, 도전하다 소멸당하는 영이 많다고 했다.



 - 제가 지옥에 간다는 뜻인가요?

 그 중간.

 - ……….

 그대가 머무를 곳은 내 품.

 - ……….



 싱긋 웃는 염법왕이 문 위에 손을 대기 무섭게 아비규환같은 지옥의 모습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괴롭지 않겠습니까? 염법왕이 공연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얌전히 내 품에 안기는게 좋을 것이오.



 새까만 눈동자와 붉게 타오른 눈꼬리, 염법왕의 시선은 집착으로 물들어 있었다.






 치우천왕 박성웅



 염제족의 몰락으로 염제의 속국이었던 내 나라는 어떠한 곳에도 자리를 두지 못하는 떠돌이 민족이 되었다. 나라에서는 공주의 신분이었지만 염제에서는 성의 기녀가 되어 천민만도 못한 신세에 눈물 또한 흘리지 못했다. 염제를 몰락시켰다는 구려족의 치우천왕이 성에 들리는 날, 나는 강제로 그의 앞에 불려나갔다.



 - 기녀… 홍여주 인사 올립니다.



 속곳차림이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거문고의 현을 뜯는 나를 집요하게 훑어보는 치우천왕이 술잔을 집어 들었다.



 저 아이, 염제 출신인가.

 아니오. 저희 속국의 공주입니다. 볼모 신분으로 잡혀와 지금은 기녀가 되었지요!

 ……….

 마음에 드시면 데려가시겠습니까? 계집이 성깔이 독해 사내와 따로 정을 통하지 아니 하였사옵니다.



 열심히 술을 따르는 염제의 천황이 치우천왕의 눈치를 보며 나를 가리켰다.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난 치우천왕은 다소 거칠은 손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 데려가도록 하지.



 천황이 굽신거리기 무섭게 강제로 나를 끌고가는 치우천왕은 자신의 거처에 다다르자마자 이불 위에 나를 던지듯이 밀어놓고는 치마를 들춰냈다.



 - 뭐하시는겝니까!

 조용히 하거라.



 치우천왕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고 생경한 느낌에 발버둥을 친 나는 몸서리를 치며 벽 쪽으로 기대어 몸을 웅크렸다.





 속국의 볼모로 잡혀있기 아까운 천하절색이군.

 - 비록 볼모일지언정 내 나라에서는 공주였소!

 그래, 꽃에 가시가 없으면 어찌 예쁘게만 보이겠느냐.



 무섭게 웃어보인 치우천왕은 짐승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가시 달린 꽃이 쥐는 이의 손에 피를 내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

 - ……….

 근데, 아십니까? 공주마마.

 - ……….

 쥐는 이 손에 상처를 주어도 꽃 모가지는 꺾입니다.



 발목을 움켜쥔 치우천왕이 내 몸을 끌어당겨 이마 위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나를 따라 구려로 간다면 그대에게 황후의 자리를 주겠소.

 ……….

 허나 그리하지 않는다면, 나는 오늘 그대를 강제로 취하고 이 얇다락한 꽃모가지를 꺾을 참이오.



 치우천왕의 손이 목덜미 부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죽을테요, 아니면 나와 사랑할테요?



 입술을 훑는 손가락은 애초에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말문을 막아버린다. 







 2년쯤 된 글이라 대사의 포인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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