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별 : 치명적인 순간 고르기

2017. 1. 2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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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별 : 치명적인 순간 고르기







1.



 요란한 번개소리에 일어나서 문고리를 잡을까, 말까, 이불자락만 쥐고 고민하기를 기백번 째. 조용히 머리를 감싸는 다정하고 따스한 손길이 베시시 웃으며 묻는다.






 - 안아줄게. 편하게 자.




 2.



 비오는 날 저녁은 새벽만큼이나 정적이고 고요하다. 땅에 젖은 비냄새를 맡으며 의자에 기대앉아 창 밖을 내다보는 제훈의 옆통수를 내내 훔쳐보다 넌지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 물으니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던 눈동자가 요망한 것을 가득 품고 여주쪽으로 기울어졌다.





 - 네 단추 푸르는 생각.




 3. 



 쏟아지는 태양빛을 핑계로 호텔로 숨어든 것도 벌써 수십번째다. 매번 새로운 호텔로 스물스물 들어가 이 호텔은 얼마나 쾌적하고 시원한지, 궁금해서 온 것 뿐이라는 핑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법이었다. 온 몸이 눅눅해지던 오후에 들어선 호텔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침대 맡에 기대 앉아있던 그가 침대를 톡톡 두드린다.





 - 궁금해 할 시간 지났어. 하나씩 가르쳐줄테니까 끈 풀어.





 4.


 

 우중충한 날은 무척이나 우울하다. 스크린 속을 거니는 커플을 밝히는 풍경은 밝고 쾌청했다. 화사한 곳에서 나누는 키스는 조금 더 황홀하겠지. 괜히 풀이 죽어 날 좋은데서 키스하니까 부럽다, 하고 조용히 속삭이자 픽 웃는 아인이 입술을 매만졌다.





 - 어두운데서 하는 건 무슨 기분인지 알려줘?




 5.



 푸른 녹음이 보고싶다 졸랐더니 맑은 날에 전망대까지 끌어 온 우빈이 아이처럼 좋아하는 여주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산도 오르고, 좋은 것도 보니까 행복하다, 까득까득 아이같은 웃음에 자연스레 뒤에서 여주를 끌어안은 우빈이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 난 너랑 더 올라가고 싶어. 네가 오르면 안되는 곳 까지.




 6.



 새벽밤까지 시간을 같이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비가와서 몸이 늘어져 그런 것 뿐이라며 둘러대봐도 실상 속마음은 음흉하다. 아쉽더라도 그를 보내야겠단 생각에 졸려서 먼저 집에 갈게요, 라는 말을 덧붙이자 느짓하게 내 앞으로 다가온 그가 잠깨게 해줄까? 하고 묻는다. 어설프게 고개를 주억거리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귓불에 와닿았다.






 - 너 오늘 집에 못가.




 7.



  투둑투둑, 오는 듯 마는 듯 얄궂은 날씨를 좋아하는 종석은 날이 조금 더 어두워지자 그제서야 야구배트를 내려놓았다. 한 게임 하는 것도 지친데, 끝나고 연습하면 안 지쳐? 걱정스레 묻는 여주의 볼을 부비적 거리던 종석이 고개를 내저었다.





 - 난 너랑 한 경기 더 할 수 있는데. 다른 종목으로.




 8.



 날씨 흐림, 이라는 글자에 울상이 된 나를 달래는 그는 내 양볼을 아프지 않게 꾸욱 늘어뜨렸다. 날씨는 흐림.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또박또박 말을 꺼낸다.





 - 네 몸은 그림이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까.









 오래된 글일수록 다 왜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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