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 개

2017. 2. 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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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태어나면 완전한 무無의 상태다. 태생부터 악인은 없다. 허나 짐승의 소굴에서 태어났다면 단연코 그 또한 짐승인 법이다. 그는 짐승의 늪에서 나고 자란 타고난 들개다. 높게 코를 쳐들고 자유를 좀 먹는 개.


  그는 개의 성깔을 지닌 인간이었다.




 *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 집요함이 묻어 있었다.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이 여주의 숨통을 조여왔다. 예쁘네. 다정함이 든 말투였지만, 여주는 짧은 문장에서 오한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눈이 웃는다. 



 "괴물."



 증오가 담긴 말에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옅게 큭큭 웃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스스로를 왕에 빗대어 표현했다. 원하는 모든 바를 이룩할 수 있는 전지전능함과 제 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그에게는 곧 왕의 것과 같았다. 





 "그래, 네가 날 괴물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괴물이되지."



 느짓하게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천천히 단여주의 앞으로 걸어간다.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 마다 바닥에 맞닿는 굽소리가 점진적 리듬을 형성했다. 어느새 여주의 앞에 다가온 그가 의자를 끌어 당겨 제 앞에 놓았다. 바로 앞에 자리잡은 얼굴에 여주가 고개를 떨구자 그가 고개를 틀어 볼우물로 파고 들었다.



 "어려서부터 외로운게 싫어서 남들이 오래도록 날 기억해주길 바랬어. 불쌍한 개짓거리로 시작해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지."

 "………."

 "결국 아무도 못 잊었고."



 여주의 무릎에 앉은 그가 애닳은 얼굴로 여주의 볼을 만지작 거리다 희미하게 웃었다. 날 괴물이라 부르는 사람 빼고 말야. 길게 뿜어져 나온 숨결이 여주의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어떻게해야 네가 날 평생 잊지 못하고 죽어서도 날 기억할까."

 "괴물같은 새끼."

 "더럽고 끔찍한 괴물로 각인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

 "인간은 행복한 기억보다 끔찍하고 역겨운 기억을 더 오래 품기 마련이거든."



 양 볼을 감싸쥔 그가 눈을 감았다 뜬다. 눈 두덩이 사이로 빛을 보이는 흑색 눈동자가 아까의 집요함에 추레한 감정을 담아 여주의 눈을 부술 듯 내려다 보았다. 시선을 피하려 흔들리는 눈을 억지로 부여잡은 그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감지마."

 "………."

 "네 괴물새끼가 어떻게 숨쉬는지 봐."



 죽을 기세로 입술을 깨무는 여주의 이를 쥔 그가 웃었다. 뾰족이 솟은 손가락으로 등어리를 두드리는 손길에 여주의 눈동자 위에 두려움이 스며든다. 





 "네 몸 하나하나 내 손길이 닿는 곳 마다 나를 각인시켜놓고 숨결 하나 까지 놓치지 않고 탐닉할거야."

 "………."

 "그래야 네가 죽어서도 날 못 잊을테니까."



 무언가 감금해놓듯 입술 가운데 걸린 체인이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기실 그는 여주의 온 몸 위에 각인시킬 생각이었다.



 *



 정신없이 뛰쳐나오니 어느새 덩굴 숲이었다. 앞뒤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이 놓인 풀 숲을 헤쳐 나가는 여주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나무에 기대 앉았다. 드디어 해방이다. 괴물새끼 손에서 벗어나는게 이렇게 쉬운 줄 알았다면 진작에 나왔어야 했는데. 생채기가 난 팔을 어루만지는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진짜 개새끼처럼 흔적을 따라올 게 뻔해. 조금 느려진 속도로 숲을 헤쳐나가는 여주의 귓가로 발자국 소리가 들어왔다.



 "………."



 따라 걷고, 멈추기를 수십 번. 우두망찰히 서있는 여주의 앞으로 푸른 인영이 드리운다.





 "재밌었어?"

 "…너…."

 "가끔은 풀어놓는 척 스릴을 즐기게 놔두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결국 제 발치 아래 놓일 것을 알면서도 단순한 유희 때문에 여주의 뒤를 쫓아 걷던 그가 소리없이 웃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왜! 발악으로 점철된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조용히 눈을 굴렸다.



 "나는 네 충실하고 역겨운 괴물새끼이자,"



 슬며시 올라가는 눈꼬리 끝에 매달린 어설픈 애통함이 제 마음을 숨기려는 듯 퉁명스레 뱉어낸다. 



 "개새끼잖아."



 멍멍, 개의 울음을 흉내내는 그가 여주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원래 개새끼는 주인을 못 버려. 여주의 손목을 쥐고 제 머리 위에 끌어온 그가 여주의 눈을 내려다본다. 나는 네 개새끼도 되지만 그보다 더한 위치에도 설 수 있지. 조롱을 섞은 말투에 여주가 눈을 내리 감았다. 넌 도망 못 가. 죽음의 끝자락까지 뒤집어놓을 기세로 속삭인 문장은 여주를 옭아맸다.





 "날 그대로 받아들여."



 해방을 갈구하는 손을 쥐어잡은 그가 소름끼치게 웃었다.



 


 

 


 엑 소 몬스터 발표 당시에 컨셉이 좋아서 썼던 단편

 지금보니 미친놈을 만들어 놨다는 생각 뿐이고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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