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폭군

2017. 1. 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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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강참판집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온갖 매질을 당한 계집 하나가 마당 한복판에 억울한 얼굴로 새푸른 멍이 든 얼굴을 쥐어잡고 엉엉 우는 소리를 내며 자신은 억울하다 토로했다. 국사에 바쁜 아비대신 강참판의 유일무이한 외동아들인 동원이 대신 계집 앞에 섰다.



 "고개를 들고 똑바로 고하거라. 네 어디서 이리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온 것이냐?"

 "…부인께서 이리 하셨사옵니다! 이년의 얼굴이 문제라고 매를 쥐셨나이다!"



 동원이 한숨을 쉬었다. 복숭아나무 뒤에서 도도한 작태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주를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여주의 손에 매질을 당한 여인이 적어도 수십은 되었다.




 "이 여인을 의원에게 데려가시게. 내 부인 대신 사죄의 의미로 비단 두필을 줄 터이니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오."



 그제서야 울던 여인이 고개를 쳐들고 하인과 함께 집에서 물러났다. 복숭아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여주가 동원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불덩이같은 눈모양으로 보아 필경 계집에게 호의를 베풀었단 이유로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방금 비단 두필이라 하셨습니까?"

 "그리하였소."

 "서방님께서는 비단 두필이 다 떨어진 짚신 값으로 보이시더이까?"



 겨우 눌러참던 화가 순식간에 터져나왔다. 이보시오, 부인! 사자후와 같은 소리에 놀란 하인들은 황급히 몸을 피했으나 화기의 주인공인 여주는 여전히 눈을 피하지 않고 동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 언제까지 부인의 참혹한 짓거리에 뒷감당을 해야하오!"

 "………."

 "그대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혼인 하였소? 그리 한게요?"

 "서방님."

 "예로부터 부부는 한 몸이라 무얼 하든 같이 본다 하였소! 부인 덕에 나까지 백정 취급을 받겠소!"



 동원의 일갈에 여주가 픽 웃었다. 자신의 지아비라는 인물은 늘 그랬다. 다른 계집을 함부로 몸에 품고 정을 통하면서 자신이 그 계집에게 매질이라도 하였다하면 귀신같이 뒤쫒아와 멸시하며 화를 냈다. 어찌 내게 화를 낸단 말인가? 밖으로 나도는 지아비를 온갖 감언이설로 살냄새 풍겨가며 유혹하는 계집에게 벌을 주는 것은 부인 된 도리가 아니란 말인가?



 "한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긴다하면 더이상 그대를 용납치 않을 것이오."

 "어찌 제가 계집들의 매질을 하는 이유는 묻지 않으십니까?"

 "그건 그대의 성정이 난폭해서겠지."



 내내 조용하던 여주가 순식간에 차가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서방님은 부인의 성정이 난폭한 망나니같아 아무 계집년이나 매질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겝니까! 날카로운 소리에 동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그대같이 잔인무도한 여인은 본 적이 없다."

 "잔인이라 하셨습니까!"

 "그러니 유약한 여인들을 괴롭히는 것 아니냐!"

 "………."

 "너만 아니었어도 내 선전관보다 더 높은 벼슬을 맡았을 것이다!"



 모두 제 탓이라 하였다. 여주가 그간 손을 댔던 자들은 기생들 뿐이었는데도 동원은 마치 고위급 벼슬직의 금지옥엽에게 손을 댄 양 과도하게 화를 내며 모두가 여주의 탓이라 말했다. 너만 아니었어도, 너만! 차마 이어지지 못한 뒷 말에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삼켜내는 여주가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다.



 "제 성정이 혹독하고 잔인무도하여 서방님이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하시는데…."

 "………."

 "허면!"

 "………."

 "저는 죽어 마땅한 것이옵니까?"

 "그런 말이 아니…."

 "죽어 마땅하다면 그리 하겠나이다."



 대문까지 한 달음에 달려간 여주가 무사의 칼을 꺼내 들었다. 부인! 동원이 헐레벌떡 달려와 여주가 쥔 칼을 빼앗아 들었다. 그만 하시오. 내 흥분하여 부인에게 못할 말을 하였소. 모두 내 탓이오. 길다란 칼을 멀찍이 던지는 동원은 다급하게 사과를 건넸다. 





 스스로 겁에 질려 온 몸을 떨고 있는데도 동원은 단 한번도 여주를 안아주며 다정하게 굴지 않았다. 여주의 지아비라는 자는 허울 뿐인 빈 껍데기였다.




 *




 궁정에서 꽤나 높은 관직이었던 여주의 아비는 동원의 혼례자리가 나자마자 마치 팔아치우듯 여주를 동원에게 보냈다. 4명의 자매들 사이, 세번째로 세상에 난 여주는 언제나 집 안에서는 그림자같은 존재였다. 특출난 재능도, 비상한 머리도 없던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미색 뿐이었다.



 "여생아, 네 보기에 내 박색이더냐?"

 "예? 아니옵니다! 박색이라니요. 농이 지나치십니다!"



 경대에 대고 이리저리 제 얼굴을 뜯어보는 여주는 눈을 감았다. 내 보기 싫어 멀리하시는 것 아닌가. 



 "너무 괘념치마시어요. 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워 신경이 날카로워지셔서 그러신 것일 것입니다."

 "…그런 것이냐."

 "필경 그것 때문이 분명하십니다."



 그러하다 믿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그리해야 했다. 뒤주에 쳐박아둔 쌀알같은 취급을 하는 것이 자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나라가 어지럽단 이유로 신경이 날카로와져 공연히 모질게 구는 것이어야 했다. 경대의 뚜껑을 닫은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식사는 내 직접 가져다드릴 것이니 상을 가져와다오."

 "예!"



 여생이 신이난 발걸음으로 금세 주방으로 튀어들어갔다. 다소 버거운 무게의 상을 들고 온 여생은 수어번이나 조심하시라 말하며 여주에게 상을 건네고 사랑방문을 열었다.



 "서방님, 식사 하실 시진입니다."

 "어찌 부인이 들고 오시오?"

 "제가 직접 하겠다 하였습니다."



 동원이 여주에게 상을 건네받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찬수는 적지만 일반 백성들이 맛보기 힘든 산해진미가 놓인 밥상은 동원의 미각을 자극했다. 자리를 틀고앉아 수저를 쥐려던 동원은 고개를 치켜 들었다.





 "부인 것은 어디있소?"

 "어찌 서방님과 겸상을 하겠습니까."

 "밖에 누구 없느냐! 밥을 하나 더 내오거라!"



 약간 강압적인 말투에 여주가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동원의 옆자리에 놓은 술병을 보고 빙긋 웃었다.



 "내 먹지 않을 터이니 그대로 내버려 두거라!"

 "부인! 밥상머리에서까지 나랑 입씨름 하자는 것이오?!"

 "겸상하지 아니하겠다 하였습니다."

 "어찌!"

 "저는 서방님의 술 시종을 드는 기생계집이 아니외다. 하여, 겸상하지 아니하겠습니다."



 동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제 옆에 놓은 술병을 벽으로 던졌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지는 술병 틈새로 흘러나오는 술냄새가 방 안을 메웠다.





 "이리하면 들겠소?"

 "예. 그리하신다면 식사하겠습니다."

 "허!"

 "………."

 "그래, 웬일로 고분고분히 구는가 싶었지. 앉아 밥먹는 것도 통사정을 해야 들어주니, 대체 누가 지아비고 부인인지 헷갈리는군."



여주의 미간이 울렁거리며 분노를 표했다. 누가 지아비고 부인이건 저희가 부부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동원이 웃었다. 비웃는 것인지, 재미있어서 웃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이질적인 미소였다.




 *




 동원의 친우들은 외동아들로 난 그를 무던히도 부러워 했다. 네 부모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라 한 자리 할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 나는 네가 부럽다. 동원은 되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압적인 아비 밑에서 나, 걸음마를 뗐을 무렵부터 왠갖 무술을 연마하고 글을 떼야했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나? 하나 틀릴 때 마다 그날 하루종일 같은 것만 반복해야했던 것은? 그는 부모의 깊은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쓸 만한 종마를 기르는 것처럼 구는 부모의 벅찬 교육은 동원의 마음에 길다란 자상을 냈다.



 "서방님, 오늘은 서둘러 귀가하시어요. 장에서 비싼 고기를 사와 서방님께 가장 먼저 올리고자 합니다."

 "………."

 "오늘도 제가 직접 상을 들고 가겠습니다."



 동원은 여주의 무한한 애정을 어색하게 느꼈다. 침소에 누워 제 품으로 파고들며 어깨에 뉘이는 작은 머리통이나, 살랑살랑 지어보이는 웃음, 저가 관심을 주지 않았다하여 투기하는 모습까지, 모두 그가 받기에 너무나도 어색한 것들이었다.





 "부인 것도 알아서 가져오시오."

 "예. 그리 할터이니, 서방님은 걱정말고 다녀오시옵소서."



 저가 화를 내고 모질게 굴어도 여주는 끈질기게 동원의 사랑을 요구했다. 그럴수록 동원은 목이 타는 갈증이 느껴졌다. 그럴때면 아무 기생집에나 들러 갈증이 이는 속을 해소하고자 여자를 품에 안았다. 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았다. 여주가 품에 안기려들수록 뙤약볕에 나동구는 걸인처럼 더 큰 갈증이 타올랐다.



 "저, 선전관님. 오늘도 화정란에 들르실 것입니까?" 

 "………."

 "화초를 올릴 기생 하나가 있다고 꼭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일러와서…."



 그와 함께 궁으로 향하는 무사는 우물쭈물거리며 동원의 눈치를 보았다. 





 "오늘도 그곳에 드나든다면 분명 부인이 화를 낼테지."

 "………."

 "허면 내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미루라고 전할까요?"

 "………."



 잔잔한 진동을 울리는 말 등위에 미동도 않고 앉아있는 동원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타는 듯한 갈증이 해소되지 아니한다면 내 어찌하겠는가.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어디가서 찾아야하겠는가. 동원의 머릿 속에는 여주의 야리야리한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집으로 바로 간다."



 그동안 어색하여 초야도 치루지 않고 나몰라라했던 그였다. 그 이후로 밑빠진 독처럼 무언가 새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으니, 필경 여주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정에 다다라 말에서 내리는 그는 은연 중에 미소를 지어 올렸다.




 *




 아무런 말없이 상자리를 치운 동원은 잠자리에 누우려는 여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뭘 그리 보시옵니까? 공연히 부끄러워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여주는 쿵쾅거리는 가슴 위에 손을 얹고 곁눈질을 했다.





 "부인과 내가 혼인한지 얼마나 되었소?"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래, 그랬지. 생각해보면 목이 타는 것도 딱 그쯤되었소."

 "혹 술이라도 생각나십니까?"



 동원의 말에 물이라도 떠다 받칠 심산으로 일어난 여주가 별안간 제 어깨를 뉘이는 동원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대의 사랑이 벅차오."

 "………."

 "어찌 받고 품고 주어야하는지 모르겠소."

 "………."

 "그러면서도 그대가 사랑해달라 떼장이처럼 굴면 그것이 꽤 좋기도하오."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른 두 뺨이 쿵쿵 뛰어올랐다. 바, 밤이 늦었사오니 어서 침수에 드셔야지요. 동원의 눈을 피하며 말하는 여주가 헛기침을 했다. 헌데 이상하게 그대가 그리 굴수록 내 부족한 느낌이 드니 이것이 대체 뭐겠소? 눈을 돌리던 여주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내 그동안 그대가 아닌 여인을 품었는데."

 "………."

 "더더욱 부족한 느낌이 들어 기이하여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소."

 "………."



 작게 타오르는 호롱불을 끈 동원이 살짝 턱을 치켜올렸다.



 "어쩌면 나는 그대의 사랑이 필요하여 괜히 그러는 것은 아닐까."

 "………."

 "그대가 나를 떠날까 두려워 어린아이처럼 굴며 그것을 확인받으려 다른 여인의 품을 전전하는 것이 아닐까."

 "………."

 "하여, 오늘 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것이오."



 여주의 옷고름 위에 오른 손이 아주 부드럽게 끈을 잡아 당겼다. 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고막을 온통 뒤덮을 정도였다.





 "내 그대를 안을 것이니."

 "………."

 "늘 그랬듯 그대는 내게 사랑해달라 간청해보시오."



 바닥에 닿은 머리가 전해오는 옅은 감각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제서야, 제 마음이 다 망가지고 난 후에야 저를 품에 안으려는 어설픈 지아비의 사랑이 애처롭고 기특하여 자꾸 눈물이 새어나왔다. 입술에 내려앉은 따스한 지아비의 입술이 떨어지고 나자 여주가 흐느끼듯 말했다.


 더욱, 더욱 더 많이 사랑해주시어요. 평생 서방님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저를 아끼고 은애해주시어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는 말투에 동원이 생긋 웃었다. 뙤약볕을 떠돌던 걸인이 우물을 찾는 순간이었다.






 

 쓴지 한 2년 됐나.

여지껏 썼던 사극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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