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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진한 얼굴과 다른 비도덕적인 인물 고르기




 





A 대학교수 김여주 / 피아니스트 박보검



 얼굴에 온통 식은땀이 흥건했다. 기분 나쁜 감정들이 구역질처럼 밀려오는 것을 보아 다시 그날의 꿈을 꾼 듯하다. 그날, 어떤 불특정한 것을 칭하는 단어를 뱉고나면 자연스레 귓가에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순진해 빠진 얼굴로.」



 경멸하는 눈 아래.



 「잘도 나를 속였군요.」



 부드러운 미소는 도무지 융합될 수 없는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상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별안간 눈 앞에 드러난 얌전한 무릎은 꿈이 아닌 현실의 것이었다. 다소곳히 무릎을 꿇고 앉아 연신 이마께를 닦아주며 걱정스런 눈으로 묻는 그의 얼굴은 유순한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너, 내 집에 어떻게 들어왔어.


 - 내가 내 집에 들어오는게 이상해요?



 앞치마까지 두르고 있는 그는 누가봐도 집주인의 모습이 영력하다. 비명소리에 놀라서 뛰쳐 들어왔는지 문 틈 사이로 밀려드는 오븐의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방 안을 울렸다. 다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쉴새없이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 손이 유독 분주했다.



 손 치워.


 - 또 나쁜 말을 하네요.


 보검아.


 - 이 손 망가뜨려 놓은게 누군지 기억 안나?



 촉망받는 피아니스트가 손을 잃는 다는 것은 사망선고와도 같았다. 전남편의 이민을 배웅하러 가던 나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낀 그가 억지로 제 손을 망가뜨려놓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런 악몽에 시달일 일도 없었을까.





 - 난 당신을 위해 내 미래를 버렸어.


 ….


 -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져야지.


 그건….


 - 이게 싫었으면 그 날 공항 안 나가고 조용히 반주실에 앉아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치켜 들 때 마다 약물 중독자처럼 떨려오는 손이 다시금 내 눈앞에 드러났다. 내 허리를 끌어안는 그가 갓난아이의 등을 두드리는 어미처럼 애틋하게 내 등을 토닥였다.



 - 잘못은 늘 당신한테 있어.



 귓 불 아래에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이 말을 이었다.





 - 당신은 내가 만든 감옥에 갇힌거야.









 B 갤러리스트 유여주 / 갤러리 관장 이제훈



 간밤에 날아든 한통의 사고 메세지는 정신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부과대가 다쳤다는 과대의 알림문자. 그 문자 위로 스쳐지나가는 익숙하고 불안한 얼굴이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내 발걸음을 끌었다. 정신없이 뜀박질을 해가며 도착한 그의 갤러리에 소늘 뻗자마자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친절히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 늦었네요?


 친, 친구가 다쳤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혹시 당….


 - 친구가 다쳤는데 왜 나를 찾아오지?



 나른한 웃음 뒤에 가려진 악랄한 눈동자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니죠? 관장님, 제 착각이죠? 겨우 입을 뗀 질문에 그가 살포시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 눈치가 빨라졌네요. 부과대 망친게 난 줄도 알고. 



 자연스레 눈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소름끼칠 정도로 따스하고 다정했다. 추근덕거리는게 화가난다고 해서, 대신 내가 처리했어요. 칭찬을 바라는 눈이 품 안에 조용히 안겨오는 강아지처럼 어깨 위에서 부비적 거린다.



 대체 왜 그랬어요? 왜 사람을 그 지경까지 만들어놔요, 왜!


 - 칭찬 해줄줄 알았는데.



 느짓하게 얼어선 머리가 싸늘한 시선으로 쏘아보다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랬긴요. 양 볼을 감싸쥐는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 당신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 할 수 있는 개새끼니까.


 ….


 - 추근덕거리는 새끼랑 혹시라도 눈 맞을지 어떻게 알아?


 ….


 - 당신한테 남자는 오로지 나 하나여야 돼. 내가 가진 수백점의 그림처럼, 오로지 당신의 주인은 나여야만 한다고.



 액자의 모서리를 닦을 때 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손놀림이 내 볼 위를 훑고 지나간다.



 - 그러니까 얌전히 내 옆에 걸려있어요.



 풀어진 굳은 얼굴 위로 드러난 순진한 웃음이 목덜미 위에 파묻혔다가 예민한 살결을 살짝 깨물고는 나즈막히 말했다.





 - 난 마음에 안드는 그림은 다 태워버리니까.









 C 애널리스트 이여주 / 기업 대표이사 송중기



 유약하고 가녀린 얼굴에 비해 타고난 일처리로 금세 대표의 자리를 취득해낸 그는 모든 금융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뒤 따르던 경외심 어린 나의 시선은 그의 밑바닥을 보며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 당신이 분석해준 예측전략, 완전히 틀렸던데.


 알아요.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 자리를 걸어야했다. 현재 동향과 전혀 맞지 않는 엉망의 예측 투자 전략대로 운용된 그의 자산은 반토막이 났고, 그걸 메꾸기 위해 그는 밤낮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들러 다녔다.






 - 왜 그랬어요? 그러면 내가 당신 버릴 줄 알았어요?


 ….


 - 여주씨는 정말 순수해.



 그 언젠가 욕심없이 순수하게만 웃음이 이제 내 영혼부터 쥐고 흔드는 칼날이 되었다. 뒤에서 다가와 허리를 감싸쥔 그의 손이 어느새 내 쇄골 위에 얹히고, 단단한 뼈의 모양을 따라 움직이는 손가락이 뜨거운 열기를 불어넣는다.





 - 내가 그쪽 회사랑 거래를 하겠다는겐 흔해빠진 선물거래 이야기가 아니야.



 턱선을 매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레 입술 위로 올랐다. 돈은 얼마든지 다시 벌 수 있어. 네 회사가 아니더라도 투자해달라고 무릎 꿇고 기어들어오는 곳들도 차고 넘치지. 시선 끝으로 다가온 그의 얼굴이 해사한 미소를 걸쳤다.



 - 내가 투자한 건 하나야.


 ….


 - 당신이지.



 귓가를 파고드는 음성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든다.



 - 투자종목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해야겠어, 이여주?



 셔츠 옷 깃을 쥐고 흔드는 투박한 손이 흥분감에 도취되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거래를 다시 해야겠지. 비싯비싯 새어나오는 웃음이 시야 앞을 가로막는다.





 - 내가 원래 투자하고 싶었던 걸로.









 D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여주 / 미즈치 (수인) 서강준



 새로운 작업을 맡게되며 필요한 컨셉 이미지를 위해 각양각색의 바다를 돌던 날이 있었다. 강인한 이를 가진 바다악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않는 희귀종과도 같았다. 



 - 악어, 아직도 찾으시나봐요.



 어둑한 백사장 옆에 앉은 남자가 말을 건 것은 순식간이었다. 놀랄만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남자는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엔 과할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꼭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요 몇주사이 근처를 떠돌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쉽지않다고 어설프게 웃어보이자 남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 늘 물 밖으로 나오고 싶었어요.


 물 밖이요?


 - 인어는 부드럽지만 물기엔 무리가 있거든요.



 의미모를 소리를 해대는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인간 살냄새가 어떤지 알아? 너무 달큰한 향이 나서 곤욕스러울 정도야. 숨을 들이킬 때 마다 식도가 아우성을 치지.


 당신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숨쉴 때 마다 물고 싶어.


 ….


 - 당신의 그 하이얀 목덜미. 만지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함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내 손목을 낚아 챈 남자가 이를 드러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 마치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의 가죽같은 단단한 손이 곧장 나를 제 앞으로 끌어당겼고 혹여 도망이라도 갈까 두 다리로 나를 결박해놓은 남자가 슬며시 제 입술을 핥는다.



 - 재미 좀 보려고 나왔는데, 벌써 가면 섭섭하지.


 이거 놔!


 - 온통 물고싶은 곳 투성이라 어디부터 물어줘야될지 모르겠네.



 벌어진 입 틈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움,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순한 얼굴이 입술을 덮쳤다.





 - 가만히 있어. 난 여자 몸에 상처내는 취미는 없어. 아직은.









 E 퍼스널 쇼퍼 정여주 / 재벌3세 임시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것이 들통났을 때 사람은 분노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나는 되려 반대의 상황이었다. 그의 치졸한 바닥을 확인한 순간부터 나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다.



 - 예쁜 옷을 가져왔네요.


 …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


 - 예쁜 얼굴도 같이 가져왔는데, 말투는 영 별로고.



 내 손에 들린 수트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 예쁘게 하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광기를 숨긴 두 눈을 황급히 피하자 그가 억지로 내 턱을 끌어올렸다.





 - 시선 피할 때 마다 키스할거에요.



 입술 위를 꾸욱 누르는 손가락이 립스틱을 볼까지 끌어왔다.



 - 물론 여기에만 한다는 건 아니에요.


 ….


 - 당신 몸 어디든 내 입술을 닿지 못할 곳은 없을테니까.



 피식 웃는 소리는 분명 비웃음이었다. 느물거리는 시야를 겨우 부여잡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보자, 살짝 고개를 치켜든 그가 내 입술을 깨물었다.



 - 그렇게 쳐다봐도 키스할거야.


 제발, 이제 그만 하세요. 도련님도 충분히 보셨잖아요, 제 바닥….


 - 나는 네 바닥만으로 만족 못 해.



 삐져나온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는 그가 애살스레 웃는다.





 - 가끔은 내가 너무 나쁜사람이 아닐까싶은 생각도 들어.


 ….


 - 그래도 별 수 없어.


 ….


 - 난 네가 무너지는게 너무 재밌거든.



 이 바닥에 있기엔 너무 약하다는 사람들의 말들은 곧 제 주제를 과히 평가한 오만이자 편견이다. 내부부터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그는 바닥에 떨어진 수트를 짓밟고 내 앞으로 걸어와 제 손으로 넥타이를 푸르기 시작했다.



 - 옷을 가져왔으면, 어울리는지도 봐줘야죠.



 셔츠 단추를 하나씩 푸르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보아 그는 분명 이 상황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확실했다. 이제 다른 바닥도 봐줘요. 살풋이 모습을 보이는 맨살이 유독 붉게 보인다.





 - 그래야 내가 지금 네가 감춰온 그림자를 볼 수 있으니까.


 


 



 피스톨즈 고르기보다 먼저 쓰였고,

 소재를 주신 분이 계셔서 거기에 맞춰썼던 글인데 ㅋㅅㅋ

그냥...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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