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를 짝사랑하는 친구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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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를 짝사랑하는 친구 고르기
01 김지수
여주를 여자로 보기 시작한 지도 3년 째다. 친구관계가 깨지는 건 두렵고, 그렇다고 나 혼자 애닳게 짝사랑하는 것도 지겹다. 착하고 좋은 놈은 두고 나쁜새끼한테 매달리는 걸 보면 너는 정말 답답하다 못해 바보같아 보일 지경이야.
김지수, 듣고 있어?
- 어. 말해.
홍주랑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급한약속 있다고 해서…. 너 시간되면 술먹자고.
- 걔 진짜 급한약속 있는거 맞냐?
…자기가 있다고 하니까 있는거지.
- 그 새끼,
너말고 다른여자랑 카페에서 여보자기하고 있던데, 하고 말하려다 금방 관뒀다. 우리 홍주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울게 뻔하니까. 그 새끼 감싸주는건 싫지만, 난 네가 우는 게 더 싫어.
어? 홍주가 뭐?
- 아니, 내가 사줄게. 가자.
여주가 늘어놓는 홍연푸념을 듣다보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내게는 어려운 네가, 너를 막다루는 그 새끼가, 그리고 친구로 속이고 너를 사랑하는 내 자신이.
홍주 나쁜건 나도 아는데… 그래도 좋은데 어떡해.
- 유여주 많이 취했네.
홍주가, 지수 너만큼만 됐어도 속 안 썩일텐데….
- 여주야. 너 취했다, 그치?
한 개도! 안 취했는데! 멀쩡해!
집까지 여주를 바래다주는 길은 길고, 유여주를 업고 있는 시간은 너무 짧다. 내 등에 엎혀서 투덜투덜 속상한 일을 터놓고 있는 너는 내게 너무 잔인하다.
- 여주야.
응….
- 내가 너 좋아하는 건 아냐?
응… 응….
- 그래. 그냥 알고 있어. 난 계속 너 좋아하고 싶으니까.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쓸쓸한지 너는 하나도 모르지. 다음 날 자기가 술에 많이 취했냐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여주를 보면 나는 또 괜히 화가 난다. 너랑 나는 7년인데, 네가 모르는 너를 내가 다 아는데.
- 유여주.
응? 지수 너 화났어?
- 너 모르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거냐?
응…?
- 됐어.
화를 풀어준다고 갖가지 애교를 피우는 여주를 보면 더이상 화를 낼 수가 없다. 못 이기는 척 받아주면 또 신이나서 떠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유여주는 모를 것이다. 김홍주는 좋겠다. 유여주의 이런 모습까지 다 가질 수 있어서.
우리 지수는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학벌도 좋고 다 좋은데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안 만드는거지.
왜? 내가 여자 소개 시켜줄까?
- 책임질 수 있어?
당연한 것 묻지 말라며 잠깐 미간을 찌푸리는 여주가 호언장담 했다. 당연하지! 우리 지수 일인데! 내가 인연대 큐피트인거 몰라? 찌푸린 얼굴이 눈 부실만큼 사랑스럽다.
- 그래? 그럼 책임지고 그 화살로 누구 하나 쏴줄 수 있냐?
누구야 누구! 김지수 마음 훔친 여자가? 내가 책임지고 이어줄게!
- 너.
……응?
- 나 좀 책임져.
이제 너랑 편하게 친구인 척 하는 거, 엿같아서 못해.
- 더 많이 사랑받는 사람이 이긴다고 하지.
- 난 항상 너한테 패자가 될게.
02 박보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고, 지금 24살이니 벌써 10년이나 됐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너는 여전히 나이만 차곡차곡 쌓았고 나는 4년동안 너에 대한 감정을 쌓았다. 김여주는 여전히 나를 가장 친한친구로 보고, 나는 친구라는 이름을 빌린 비겁자다.
- 그래, 우리 여주. 이렇게 착한데 마음 아파서 고생 많지.
휴. 그래도 네가 있어서 좋다.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
- 그래, 알아….
그렇게 확인사살 안해줘도 충분히 알아, 나는 네게 친구 밖에 안된다는 거. 하루종일 강운명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다가도 전화 한통화에 쪼르르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면 그 만큼 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나 혼자 난리난 마음 정리하느라 고생하는 거, 김여주 넌 절대 모르겠지.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그렇게 수십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통화버튼을 누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쾌한 여주의 목소리에 웃음이 난다.
응, 보검아. 왜 전화 했어?
- 어? 아… 그냥. 밤인데 넌 뭐하나 싶어서.
아~ 나 드라마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 너는?
- 난 그냥, 누워 있어.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으면서 아닌 척 너스레 떠는 것도 늘었고 누워서 네 생각을 하는데도 아닌 척 거짓말 하는 것도 늘었어. 근데 이상하게 늦은 밤 네 목소리에 설레서 횡설수설하는건 영 늘지가 않아. 귀에 꼭꼭 담아뒀다가 오늘 밤에도 네 생각을 하면서 자야지.
연초부터 계획 세운다는 말만 수십, 수백번 하더니 계획 다 세워왔다고 내게 자랑하는 김여주. 빼곡히 들어 찬 너의 계획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다보면 나는 너 몰래 그걸 하나씩 기억해둔다. 김여주와 함께 여주의 일년을 행복하게 채울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빌면서.
너무 많은가?
- 아냐, 괜찮은데. 1년은 알차게 보내겠네.
그러고보니까 작년에 너랑 부산 당일치기 갔던 거 생각나네. 진짜 재밌었는데, 너는 나랑 함께 있으면서 제일 재밌었던 때가 언제야?
- 너랑 함께했던 열네살부터 시작해서 스물네살의 오늘까지.
응? 뭐래~ 내가 그렇게 좋냐?
응, 네가 정말 좋아. 넌 아무 것도 모르지. 나는 또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딴청을 피운다. 오늘따라 참는게 정말 힘들다. 한참이나 망설이다 사게 된 반지를 내게 내밀면서 말했다.
- 이 반지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네 곁에 묶어둘 수 있대.
에이, 이런 거 미신이잖아.
- 간절하면… 가지고 있어.
근데 이거 하나 밖에 없는거야?
- 응. 그거 네 약지 손가락에 끼워.
여주의 눈에는 보이지않는 내 왼손 약지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미신이네, 뭐네 투덜대면서도 약지 손가락에 은근히 반지를 끼워넣는 여주를 바라본다.
- 그거 끼고 있는데도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네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주머니속에서 움츠러들었던 왼손을 테이블 위에 내놓고 천천히, 느긋하게 말했다.
- 그때는 나한테 와.
03 서강준
우리가 친구가 된지 언제였더라? 너는 이런걸 참 잘 기억하더라. 나는 너랑 친구가 된지 얼마나 오래 됐는지 기억이 잘 안나. 너는 내게 친구가 아니라 여자니까, 나는 네가 내 친구인게 싫으니까.
- 옆에 최상실?
응! 우리 상실이. 나 그럼 먼저 간다? 이따 카톡할게!
그렇게 팔짱끼고 세상 다 가진 것 같이 웃으면 좋냐. 저만치 멀어지는 여주에게 겨우 손인사를 해주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집에 가 누워서도 그 모습이 떠나지 않아서 괴로워하다가 잠에 드는데, 박여주는 기어코 내 꿈까지 따라와서 내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는다.
카톡 못해서 미안하다며 우연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는 여주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또 그 자식이 네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그런데도 너는 계속 머무르고 있구나. 너를 웃게하지는 못해도 울게하진 않을 내가 있는데도, 박여주는 항상 제자리다.
아휴…. 착한 내가 다 봐줘야지 뭐.
- 그렇게 봐주고 이해해주면 너만 힘들어진다.
사랑하면 다 그렇게 된다? 내 경험담이라고. 그나저나 강준이, 너는 왜 연애안해? 나 사실 너한테 조금 마음 있었는데, 동기가 나는 네 스타일 절대 아니래서 일찌감찌 접었는데.
- 네가 내 스타일 아니라고 누가 그래?
어어…? 그럼 맞는거야?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내 이상형은 쭉 너였어. 내 눈에 밟혔던 여자들은 전부 네가 기준이었어.
- 여주 너는 예쁘니까.
아, 나 예쁜거야 다 알지. 예쁜여자 좋아하는구나?
예쁜여자가 좋은게 아니라 너라서 좋은거야. 내가 예쁜여자가 좋다고 하면 너는 내가 눈이 너무 높다고 하지. 그래, 네가 너무 높아서 내가 다가갈 수 없나 보다.
오늘 날 잡고 이야기 좀 해보자. 서강준은 일단 예쁜여자를 좋아하고, 여친이 생기면 꼭 해주고 싶었던 거 있어?
- 배가 아플정도로 웃게 해주는 거, 울리지 않는 거, 숨쉬는 시간도 길게 느껴질 만큼 그리워해주는 거.
와….
다 해줄 수 있는데 그걸 받을 수 있는 여자가 그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
너한테 사랑받는 여자는 정말 좋겠다.
- 그런가.
세상에 저렇게 사랑해주는 남자가 어디있어? 크, 나처럼 예쁜여자는 흔치 않지만 찾으면 그 여자는 진짜 로또 맞은거네!
찾긴 뭘 찾아. 내 앞에 있는데.
뭐 구체적인 이상형은 없어? 포괄적인 의미의 예쁘다 말고, 좀 더 자세하게!
- 있어, 그렇게 예쁘고 내가 사랑해줄 여자.
누군데? 누구야? 와, 진짜 좋겠다 그 여자는! 히히.
- 그 여자,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어.
오래된 글 올려서 재업했을 때 그때도 수정하기 벅찼는데
지금도 벅차네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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