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가 홍일점이 될 부서 고르기

2017. 1. 3.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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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홍일점이 될 부서 고르기







 

 A 상품기획팀



  기획실장 이제훈



 한창 폭염이던 때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의지도 하나씩 꺾여나갈 때, 사측에서 ‘섬머타임제’ 를 실시했고, 그 덕에 다들 한결 나아진 듯 보였다. 열 두시면 먹는 점심을 한 시간 당겨 먹기 시작한 탓일까, 조금씩 허기진 신호를 보내는 배를 꾹 쥐고있던 여주는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 점심.


 점심이요?


 - 시간 다 됐어요, 가요.



 제훈이 내민 손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여주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아까 열시 쯤 된 것 같았는데. 섬머타임제 때문에 내가 헷갈리나. 잠시 고민하던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훈을 따라 나섰다. 한산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져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여주의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실장님, 지금 11시 안됐는데요? 10시인데….


 - 알아요, 지금 10시인 거.


 그럼 점심시간 아니잖아요. 



 어쩐지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했다. 매번 점심 때만 되면 기쁨의 박수를 치던 김주임이 조용한 것을 보니 제훈이 완전히 시간을 착각했구나 싶었다. 올라가요, 아직 한 시간 남았어요. 층수 버튼을 누르려는 여주의 손을 제지한 제훈이 고개를 저었다.



 - 시간 착각한 거 아니예요. 






 -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요.





  대리 도경수



 대개 다들 조용한 편이었지만 경수는 특히 더 심했다. 제훈이 기획서를 내밀며 도대리, 이거 요즘 주류 패브릭 아닌 것 같은데, 바꿔줘요, 하고 말하면 ‘네.’ 라는 대꾸 하나만 돌아 올 뿐이었다. 



 대리님, 저 SWOT 분석 하는 것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처음으로 분석업무를 맡은 여주에게는 실수할까 염려되어 쉽사리 펜을 들기 힘든 일이었다. 뭐라고 한 소리를 할까, 말이 없으신 분이니 눈으로 혼내시려나, 온갖 생각이 오가고 있을 즈음 경수가 나즈막히 말했다.


 




 - 앉아요, 알려줄게요.



 조용히 제 자리를 내어주고 간이 의자에 앉은 경수가 차분히, 여낙낙한 목소리로 하나씩 지도하기 시작했다. 



 - 이해했어요?


 네, 덕분에요. 대리님이 쉽게 설명해주셔서요.


 - 다행이다. 내가 설명을 쉽게 해준 게 아니라, 여주가 잘 알아듣는 거예요.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절로 입이 떡 벌어진다. 오늘 처음 분석 하는 거예요? 샘플 줄까요? 아니면 나랑 같이 해요. 개인적인 이야기는 커녕 질문조차도 안하는 경수의 모습이 생경한 탓이었다.



 대리님 생각보다 말이 되게… 많으신 편이셨네요?


 - 말 별로 없어요. 여주씨니까 말 길게 하는 거예요.


 -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 혼자 여자라 외로울까봐 걱정되서.






 - 여주씨는 뭐든 말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워 보여요.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아무거나 해요, 즐겁게 해줄게요.



 


 

 



 B 경영전략팀



  팀장 권지용



 괜한 객기를 부려 과한 음주를 한 것이 문제였다. 분명 아침인데도 어질어질 하고 속이 아픈 것이 필경 술이 안 깼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어쩌지,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지용에게 전화를 건 여주가 분주하게 방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 네, 여주씨.


 저기, 팀장님. 저 오늘… 그러니까….


 - 말해요, 듣고 있어요.



 위염이라서? 장염? 뭐라고 하지? 짧은 시간 내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결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아니예요, 제가 늦잠을 자서 지각할까봐서요. 아무렇지 않은 척, 힘차게 말하기 무섭게 대답이 뒤따라온다.



 - 쉬어요, 오늘 출근 안 해도 돼요.


 네? 그게 아니고, 출근은 할 건데….


 - 목소리 안 좋은 것 같아서. 어제 무리한 거 아니예요? 쉬어도 돼요. 아프면 쉬어야지, 뭐하러 나와.


 그, 그래도 어떻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혹여나 훗날에 고과에 문제가 생기거나 소문에 시달릴까봐 대뜸 겁부터 났다. 전 괜찮아요, 나갈게요. 퍽 단호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강경했다.



 - 내가 안 괜찮아요. 아프면 걱정 돼. 걱정만 계속 하면 실례인 거 알면서도 찾아가고 싶어져.





 - 그러니까 쉬어요. 그리고 더 아프면 연락해요, 갈테니까.





 주임 박보검



 제 외모만큼이나 해사한 사람이었다. 무표정일 떈 뚝뚝함이 흐르다가도 웃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양순한 아이얼굴이 되는 것이 신기해 여주는 보검을 유독 따랐다. 남는 시간 동안 무얼할까,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여주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보는 보검의 곁에 다가섰다. 



 선배님 THE 1975 좋아하세요?






 - 여주도 좋아해요?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린 여주가 어느새 보검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 CHOCOLATE 랑, LOVE ME 가 제일 좋아요! 매튜 목소리가 정말 경쾌하고, 재잘재잘 떠드는 여주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보검이 막 플레이 리스트 위로 떠오른 앨범아트를 가리킨다.



 - 이 곡 좋아한다고 했죠, LOVE ME. 나도 이 곡 좋아해요.


 들으면 신나지 않아요? 춤도 추고 싶고!


 - 여주씨는 이 곡이랑 닮았어요.


 네? 


 - 좋다고요.



 의미모를 미소를 흘린 보검이 롤처럼 올라가는 가사를 바라본다. 괜히 뻘쭘해져 보검과 같은 곳에 시선을 두고 속으로 가사를 읽어내려가는 여주가 별안간 보검과 눈이 마주쳤다.



 - If that's what you wanna do and love me, 라는 구절이 나올 땐 늘 여주씨 생각이 났어요.






 - 원해요? 나랑 같이 사랑하는 거.


 


 


 직장이 주가 되는 내용이면 직업병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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