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의 아저씨 고르기

2017. 1. 1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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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아저씨 고르기






 01 아저씨, 하정우



 나와 띠동갑인 아저씨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고등학교 시절 때 부터 보던 장난꾸러기였다. 내가 막 스물을 훌쩍 넘기며 연애를 시작했을 때,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내 인생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 와, 우리 김여주 하의가 너무 실종이네.



 치마만 입으면 터져나오는 구박은 내가 외출할 때 늘 주절주절 잔소리를 해가면서 뒤를 따랐다.



 왜 자꾸 따라다녀요!

 - 너 몹인 줄 알고 공격당할까봐 따라다닌다, 왜.

 재수없게 진짜! 치마 입을 때만 난리야!



 저렇게 내 성질을 살살 약올리다가도, 지나가는 남자의 시선이 다리에만 닿으면 굳은 표정으로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남자를 노려본다.



 - 지금 이 상황이 뭔가 감이 안 잡힐거야. 나한테 쳐 맞기전까지는.

 


 남자가 혼비백산하며 뛰쳐가면, 또 금세 장난스러운 표정이 된다. 그러면서 주변 남자들 경계는 어찌나 하는지, 꼭 든든한 보디가드를 곁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여주, 누구거야.

 아저씨꺼요.

 - 그치, 아저씨꺼지. 아저씨는 딴 새끼들이 너 보는거 못 참아요.



 어이없어 피식 웃으면 아저씨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 볼을 주욱 잡아 늘어뜨리면서 이마에 뽀뽀를 한다. 그런 그를 너무 믿고 풀어진 날, 술을 마시고 게 귀가하던 새벽 밤에 우리집 현관문 기대 앉아있던 아저씨가 화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아저씨, 집 안가요?

 - 김여주.

 이런데서 자면 입 돌아가는

 - 너 진짜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새빨개진 눈으로 무작정 끌어안는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마까지 얼어붙어 시린 몸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무언의 신호같이 느껴졌다.





 - 어떻게 할까, 너.

 늦어서 미안해요.

 - 너는 너 하나 밖에 모르지.

 연락하는 걸 깜빡해서… 앞으로 안 늦을게요.

 - 세상에 김여주는 하나 밖에 없는데, 나한테는 니가 내 세상의 전부야.



 기대 안는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그는 온 몸으로 제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였다. 언뜻보면 백수같아 보이지만 번듯한 직장이 있는 아저씨는 월급날이 되면 통장을 팔랑팔랑 흔들며 내게 뛰어왔다.



 - 김여주. 아저씨 오늘 월급탔다. 털어가, 내 통장.



 무얼 말하던 항상 비싼 곳으로 데려가주는 아저씨는 내가 먹는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 모습에 심취해있던 나는, 문득 지난 날 내게 핀잔 아닌 핀잔을 하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취향은 알지만 진짜 아저씨들은 위험하다고. 다 너 가지고 노는거야. 그 아저씨랑 헤어져.



 조용히 나를 보고 있던 아저씨가 내 코를 아프지않게 잡고는 씩 웃는다.





 - 나 앞에 두고 다른 생각하지, 또.

 아저씨, 나 결혼같은 거 못하겠죠?

 - 무슨 소리야.

 아무도 나같은 여자애랑 결혼하고 싶지 않겠지?

 - 아니, 나라면 해. 너같은 여자 말고 너랑.



 시큰하게 아려오는 눈에, 가려운 척 눈을 비벼대며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데 아저씨가 눈치 채고는 내 눈가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는다.



 - 결혼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여주 니가 아니라 내가 하는거야. 너 데려갈 남자가 하는 거라고, 여주야.

 …….





 - 평생 책임져 줄테니까, 나랑 살래?








02 아저씨, 박성웅



 아저씨는 대부업체의 큰 손이었다. 우리의 연애기간이 1년여를 훌쩍 넘었을 때 안 사실이었다. 속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한 나는 아저씨 모르게 훌쩍 도망을 갔는데, 하루도 채 안되서 아저씨가 나를 잡으러 왔다.





 -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근데 나 하는 일 자랑거리는 아니지 않냐. 난… 너한테 자랑스럽고 싶어.



 아저씨 손에 붙들려 되돌아 온 이후로, 아저씨는 의처증에 걸린 사람처럼 수시로 나를 보러왔다.


 

 아저씨, 이럴거면 우리 그냥 같이 살면 안돼요?

 - 난 자신 없어.

 귀찮게 뭐하러 맨날 나 보러 와요?

 - 자신은 없고, 니가 내 눈에 안보이면 불안해서 화가나고. 이렇게라도 너 보러 와야지. 평생.



 잔혹하고, 악랄하고, 지독했지만 나만큼은 유별나게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었지만, 업계에서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아저씨는 대부업체와 어둠의 세계에서 큰 손이었다. 깜짝 놀래켜 주겠다며 아저씨 회사에 들이닥친 나는 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경악했다.



 - 사람 뒤지는데는 순서 없다잖아? 난 참 그 말이 웃겨요. 뒤지는데 왜 순서가 없을까?

 - 나는 이렇게 순서 정해놓고 너같은 새끼들 모가지 따고 조지면서 죽이는데, 안 그래요?

 - 나 우리 아가 보러 가야되는데 자꾸 내 바짓가랑이 잡으면 곤란해.



 어마무시한 살기에 도망쳐 나오자마자 어떻게 알았는 아저씨가 바로 뒤따라 왔다. 겁에 질린 나를 껴안은 아저씨가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리 와봐, 아가. 

 아저씨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은….

 - 나랑 같이 있으면 니가 몰라도 될 일, 알면 안되는 일 많이 겪을거야. 근데 아저씨는 너 못 놔줘.

 …….

 - 떠나고 싶어? 그럼 내 숨도 가져가.



 제 목숨처럼 나를 아껴주는 아저씨의 난폭한 사랑에 빠져든 나는 옆자리를 지키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없다던때는 언제고, 도망가기 전에 묶어놓겠다며 나를 자신의 집에 들인지도 오래. 아저씨는 매일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칭찬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왜 이렇게 예쁠까, 우리 아가는. 아저씨한테 사랑 받으려고 이렇게 태어났나?

 - 자꾸 눈 감고 있으면 키스한다? 기왕에 눈 감고 있어주시면 감사하고.



 공연히 부끄러워 예뻐해주지 말라고 툴툴대면 예쁜 것은 사랑받아야 한다며 나를 안아준다. 비록 무서운 사람이지만, 남자다운 외모에 섹시하고 돈도 많은 이 아저씨는 왜 이 나이까지 혼자였던 걸까? 혹시 나 모르게 결혼했던 건가?



 아저씨, 설마 돌싱이라거나 그런거 아니죠?

 - 그럼. 혼자였지, 계속.

 그럼 왜 결혼도 안하고 애인도 없이 혼자 살았어요?

 - 내가 왜 지금까지 혼자였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오늘 우리 단이 눈 보니까 확실하게 알겠네.





 - 널 만나려고 고통스러웠던 거야. 넌 내가 가진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워.








03 아저씨, 이제훈



 글을 쓰는게 직업이라는 아저씨는, 작가라는 호칭에 걸맞게 아주 박학다식했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아저씨는 수줍은 얼굴로 내 고백을 받아 들였다. 아저씨는 종종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것들이었다.





 - 여주야, 아저씨 자는 동안 옆에 앉아서 지켜봐주면 안돼?

 아저씨가 어린 앤가. 왜요?

 - 그러면 꿈에서도 너를 꿈 꿀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춘기 소년처럼 싱긋 웃는 아저씨가 좋아서, 안된다는 아저씨를 기어코 설득해 집에 들어 앉았다. 글을 쓸 때면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발소리도 내지 않고 방에 앉아 책을 읽는데, 아저씨는 꼭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간다.



 -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 널 봐야 사랑을 아는 것 같아.

 - 자꾸 확인하고 싶어, 여주 니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는 거.



 그 해 아저씨는 가장 예쁘고 행복한 연애소설 한권을 집필해냈다. 구구절절 작가의 말을 옮길 필요가 없다던 아저씨는 딱 한 문장만 넣었다.



 「내가 취해있는 유일한 존재에게 받칩니다.」



 그걸 계속해서 읽고 있다가, 내 머리칼을 만지며 베시시 웃는 아저씨에게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늘 표현력이 남 다른 것 같아요. 예술적이야. 나른한 미소를 짓고있던 아저씨가 살며시 고개를 젓는다.





 - 아냐, 여주 덕분이야. 니가 있어서 내 글이 아름다워지는거야.

 이봐, 보통 남자들은 이렇게 말 못한다니까?

 - 여주 넌 내 인생의 유일한 예술이니까.



 아저씨는 글을 쓰면서도 혹여 내가 외로워질까봐 간헐적으로 방에서 나와 나를 안아준다. 손길은 늘 따뜻했고, 품에서는 단내같은 게 났다.


 항상 글을 쓰는 아저씨는 책을 자주 펴냈다. 글에 욕심이 많은걸까, 아니면 내놓으라하는 상을 받고 싶은걸까.



 아저씨는 꿈이 뭐에요? 문학상 받는거?

 - 아니. 글에 욕심 많이 없어.

 에이, 글에 욕심 없는 작가가 어딨어요?

 - 내가 욕심 내는건 단이 너 하나야.

 치…. 진짜 꿈 없어요?

 - 있지. 너.



 황홀한 목소리에 내가 눈을 꿈뻑꿈뻑 거리면 아저씨가 생경한 남자 목소리로 말한다.



 - 너는 내 꿈이니까, 나는 죽어서도 계속 너를 꿈 꿀꺼야.

 …….

 -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너를 이뤄내야지.





 - 평생동안 너를 꿈꿀 수 있게 아저씨 옆에 있어줄래?




 



 언제적 글이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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